제52회 뉴스부문_새누리당 불법선거운동 혐의 조사 _KBS 심인보 기자

부인하기에는 너무나 명백한 증거

선관위가 적발하고 KBS가 보도한 새누리당의 불법 선거 운동 사무실에서는 그야말로 엄청난 증거들이 쏟아져 나왔다. 방송에 보도된 상황판이나 임명장은 물론이고 새누리당 편에서 작성된 문건들이 캐비넷 몇 개 분량으로 쏟아져 나왔다. 새누리당 관계자에게 보내는 것처럼 보이는 보고서는 물론 안철수와 문재인에 대한 공격 논리를 담은 문건, 4대강 사업 등 여당에 불리한 이슈에 대한 대응 논리를 담은 문건, 박근혜 후보의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한 SNS 전략을 담은 문건 등 증거는 끝이 없었다.

선관위는 이례적으로 사무실을 적발한지 만 하루도 안돼 보도자료를 냈다. 보도자료에는 사무실 운영비를 새누리당 관계자가 댔으며 새누리당 관계자에 대한 보고 역시 정기적으로 이뤄졌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매사에 조심스러운 선관위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새누리당 “SNS 학원”.. 피의자는 선관위 역고소 

그런데 새누리당은 이 사무실이 당과는 관계없는 개인 사무실이라고 주장했다. 나중에는 윤 모씨 개인이 운영하는 SNS 학원이라고 주장했다. 불법 선거 사무실을 운영한 혐의로 고발조치 당한 윤 모씨는 선관위를 허위사실유포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당초 이를 보도한 나까지 고소 대상에 포함시켰으나 마음이 바뀌었는지 고소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이같은 고소 방침을 국회 기자실에서 브리핑했다. 그 자리에는 새누리당 대변인이 동석했다.

선관위가 불법 선거의 증거를 확보하고 이를 고발했는데 피고소인이 여당과 함께 선관위를 역고소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직선제를 통한 정부 선출의 전통과 선거 관리의 경험이 그래도 25년이나 된 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선관위의 고발장을 접수한 검찰은 사건을 중앙지검에서 남부지검으로 내려보낸 뒤 고발 39일이 지난 지금까지 (현시점 2013년 1월 22일) 수사의 진행 경과에 대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거꾸로 뒤집힌 ‘죄와 벌’

새누리당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자 주변 사람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의 안위를 걱정하고 나섰다. 인터넷 극우 커뮤니티에서는 ‘좌빨 기자를 영원히 퇴출시키자’는 류의 글들이 올라왔다. 선관위는 초조하게 두 사건 (불법 선거 고발과 명예훼손 피고소)의 수사 경과를 지켜보고 있다.

반면 불법 선거 운동의 피의자인 윤 모씨는 트위터를 통해 이외수 선생의 ‘감성마을’ 퇴출 운동을 벌이는 등 여전히 기세등등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선거에서 이겼으니 어떤 불법이라도 덮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읽힌다. 어느 새 다른 곳에 다시 ‘SNS 학원’을 차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아무도 이런 상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서울 영등포 경찰서가 대선이 끝나자 MBC 김재철 사장을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데서도 읽을 수 있듯, 한국 사회는 정치권력의 의지가 법의 잣대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는 참담한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축적된 학습효과일 것이다. 

공론장의 왜곡을 방치해서는 안된다. 

우리 사회에 최소한의 자정능력이 있다면, 논의의 수준이 이런 정도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불법은 불법으로서 엄정히 처벌하는 것은 기본이다. 불법을 적발한 선관위 관계자외 이를 보도한 기자가 신분상의 불이익을 받을까 전전긍긍해서는 안되는 것도 당연하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야할 화두는, 바로 특정 정치세력이 공론의 장을 조직적으로 왜곡시키는 일의 정치적 위험성이다. 윤 모 씨의 선거 사무실은 공식선거운동 기간에 적발됐기 때문에 불법이 된 것일 뿐, 평상시라면 현행법상 위배되는 조항이 없다. 선관위 발표대로 특정 정당과의 강력한 관계가 의심되는 자가, 돈을 주고 사람을 고용한 뒤 인위적인 방식으로 수천, 수만의 팔로워를 만들고 특정 정당을 위해 정교하게 생산된 논리를 무차별적으로 살포함으로써 공론의 장을 왜곡시킨다고 해도, 선거 운동 기간이 아니라면 이를 통제하거나 처벌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음습한 사각지대에서 이른바 ‘십알단’과 ‘트위터 전사들’과 ‘일베충’들이 돗버섯처럼 늘어나고 있다. 이들이 왜곡시키는 공론의 장에서 과연 대의제 민주주의가 그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특히 지금처럼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시기라면 더욱 그렇다. 민주주의가 물고기라면 공론의 장은 이 물고기가 살아가는 물이다. 물이 더러워지면 물고기는 죽거나 기형이 된다. 슬프지만 지금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이미 ‘기형’으로의 변이를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