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회 기획다큐부문_조희팔… 살아있다._KBS 안양봉 기자

유리관에 누워 있는 남자…‘조희팔’
경찰청이 조희팔이 중국에서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한 것은 2012년 5월 21일이다. 이 때 공개된 조희팔의 장례식 영상을 보면 조희팔은 유리관 안에 황금색 두건을 쓰고 누워 있다. 우리 풍습에 맞지 않게 망자의 얼굴을 클로즈업해 보여준다. 누군가에 자신의 죽음을 알리고 싶은 의도가 담겨 있다. 조희팔은 왜 자신의 죽음을 알리고 싶었을까? 그리고 조희팔의 죽음으로 이익을 보는 사람은 누구일까? 이 같은 의혹에서 취재는 시작되었다.
조희팔 사건을 보도한 그 동안의 기사를 보면 흔히 ‘단군 이래 최대 사기 사건’, ‘희대의 사기꾼’ 등의 수식어가 붙는다. 수식어에서 드러나듯 피해자 3만 여 명, 피해액 3조 5천억 원은 단일 사기 사건으로는 최대 규모다. 하지만 이런 피해에도 불구하고 조희팔 사건은 2008년 발생 당시, 잠시를 제외하고는 언론의 주목을 그다지 받지 못했다. 불법 다단계 사건으로 피해액이 2조원 대인 ‘주수도 사건’이 세간에 잘 알려진 것과 비교해 보면 그 동안 우리 언론이 ‘조희팔 사건’에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알 수 있다.
흔히 언론의 역할을 말할 때 환경감시와 의제설정 기능을 꼽는다. 사건에 관한 정보를 수집해 사회 구성원에게 전달함으로써 여론을 환기하고, 곧 우리 사회가 풀어가야 할 의제를 제시한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조희팔 사건은 언론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대표적 사건이다. 피해자들의 애타는 절규도, 범죄 가해자의 철면피한 행실도, 그리고 범죄 비호세력의 뻔뻔한 모습도 주목받지 못했다.
‘조희팔 사망 여부’어떻게 확인할 것인가?
막상 조희팔 죽음에 대한 의혹에서 취재는 시작했지만, 조희팔 사망의 진위 여부를 어떻게 확인할 것인지는 난감했다. 우선 과거 조희팔의 측근 세력, 특히 조희팔의 중국 밀항 과정에 개입한 인물들을 대상으로 취재를 시작했다. 이들을 통해 중국으로 밀항한 이후 조희팔의 행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국으로 달아난 조희팔이 어디에 거처를 마련하고 은신해 왔는지, 누구와 어울렸는지, 자주 드나든 식당과 골프장은 어디인지… 등이 이때 확인되었다. 조희팔과 함께 인터폴 수배된 측근 2명을 체포한 중국 공안도 취재하기로 했다. 측근을 체포했다면 분명 조희팔의 행적을 파악하고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 중국 현지 보도를 통해 체포 작전을 벌인 중국 옌타이 공안국 수사 책임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중국 출장길에 올랐다.
우선 조희팔이 사망한 장소로 발표된 호텔로 갔다. 그런데 호텔 종업원은 한국 사람이 호텔에서 죽었냐는 질문에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다. 다른 동료 직원들에게도 확인을 요구했으나 마찬가지 대답이었다. 조희팔이 죽었다는 호텔에서는 정작 그런 일이 없다고 한다. 조희팔이 자주 드나든 웨이하이와 옌타이의 골프장 5곳을 뒤졌다. 골프장 캐디들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조희팔을 목격했는지 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5곳의 골프장 가운데 2곳에서 최근에 조희팔이 골프장을 다녀갔다는 증언이 나왔다. 얼굴은 물론 조희팔이 중국에서 사용한 ‘조영복’이라는 이름까지 분명히 기억하는 캐디도 있었다. 지난해 12월에 죽었다던 조희팔이 올해도 골프를 치러 왔다. 조희팔의 죽음이 거짓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다면 조희팔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먼저 조희팔 측근들에게 전해들은 웨이하이의 거처, 한 아파트로 달려갔다. 하지만 조희팔은 없었다. 몇 달에 한번 씩 거처를 옮겨왔다는 측근들의 말로 짐작해 보면 다른 곳으로 은신처를 옮겼을 것이다. 중국 옌타이 공안국으로 갔다. 중국 취재 특수성상 기자라는 신분은 속이고 만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옌타이 공안국의 이 수사 책임자는 더 놀라운 증언을 했다. ‘조희팔이 살아 있고, 공안에서는 행적까지 파악하고 있다’. ‘2012년 2월 조희팔 측근2명을 체포할 때 함께 검거할 수도 있었지만 상부의 지시가 없었다’. 조희팔을 체포하기 위해 그동안 중국 정부와 공조 수사를 펴왔다는 우리 수사당국의 입장을 뒤집는 말이다. 조희팔을 못 잡는 것이 아니라, 안 잡는 것이란 말인가? 그러나 더 이상 조희팔의 행적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김광준 검사 사건마저 불거지면서 어딘 가에 더 꼭꼭 숨었을 것이다.
취재 한계에 부딪힌 의혹들…       
중국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니, 국내에서는 김광준 검사 사건으로 난리가 났다. 김광준 검사는 지난 9월 본격적인 취재를 시작한 우리 취재에서도 조희팔의 비호 유착세력으로 거론된 인물이었다. 하지만 김광준의 비호 유착사실을 취재를 통해 확인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김광준의 계좌를 볼 수 없으니 우리에게 유력한 증언을 한 인사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팩트를 확인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경찰과 특임검사 수사를 통해 드러난 김광준의 피의사실을 보면 우리에게 정보를 제공한 인물의 증언이 터무니없지는 않았다.
이처럼 취재의 한계에 부딪혀 사실 관계를 밝히지 못해, 방송에 담지 못한 유착세력은 김광준 검사 외에도 많이 있다. 현재도 의원직을 갖고 있는 유력 정치인, 현 정부 때 불거진 다른 비리 사건으로 수형 생활을 하고 있는 인물, 그리고 유력가의 부인 등이 피해자들 사이에 거론되는 인물이다. 방송 이후 조희팔의 행적에 대한 제보도 이어졌다. “산둥성 제남으로 거처를 옮겼다”, “한국의 한 기업인과 중국 랴오닝성에 석유관련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일단 취재수첩 한쪽에 정리해 두었다. 다음에 기회가 있으리라.
조희팔 사건 피해자들은 조희팔이 최대 1조원의 범죄수익금을 은닉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가운데 경찰 수사로 드러난 2천억 원 정도는 피해자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범죄수익금은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다. 김광준 검사 사건으로 일부 드러난 조희팔 사건 비호세력의 실체도 밝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희팔을 서둘러 검거해 국내로 송환해야 한다. 피해자들은 조희팔 사건을 현 정부에서 발생한 최대 게이트 사건으로 꼽고 있다. 이것이 피해자들의 근거 없는 트집 잡기인지, 아닌지를 밝힐 의무는 수사 당국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