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회 기획보도부문_믿기지 않는 구타사건_MBC 김재용 기자

“한 대에 100만 원을 준다고? 그럼 나도 한번 맞아볼까?”
취재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서울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남산에서 오프닝(기자가 마이크를 들고 내레이션을 하는 것)을 하고 있는데, 기자의 멘트를 듣던 한 시민이 우스개 소리로 툭 던 진 말이었습니다. 답 대신 어설픈 미소를 던지고 자리를 떴지만 두고두고 씁쓸했습니다. ‘돈 을 준다는데 아무려면 어떠랴’하는 일부의 세태가 다시 한 번 정수리를 후려치는 느낌이었습 니다.
야구 방망이의 위력을 확인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이겠지만, 취재 과정에서 오래전 프로 야구 선수로 활약했었던 친구에게 전화로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알루미늄 배트로 한 대 맞으면 어느 정도야? 십 여대를 맞았다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데 친구의 첫마디가 모든 걸 대변했습니다.
“이 친구야, 젊은이도 한 대만 맞아도 ‘살려주세요’라는 말이 저절로 나와. 방망이로 두들 겨 맞는데, 그걸 아픈지 안 아픈지 꼭 머리로 생각해봐야 해? 뭐 13대라고? 누가 작심하고 殺意(살의)를 가지고 때렸구나. 그런데 지금도 맞고 일하는 사람이 있어?” 어떤 이유를 붙여도 비상식적이고 비윤리적인 구타란 주제를 가지고, 지난 연말 좌충우돌 해야 했습니다. 모든 정황상 구타가 분명한데 가해자의 답변을 듣기 위해, M&M 본사와 인천 등 수도권 지사, 그리고 자택을 왔다갔다 했습니다. 말 그대로 다람쥐 쳇바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구타 현장에 있었던 최철원 전 사장의 최측근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 니다.
“그건 파이트 머니(fight money)였습니다.”
나름 확신하고 있던 터라 “구타한 것이 맞습니까?”라고 곧바로 핵심 질문을 던졌는데, 최 전 사장의 측근은 의외로 순순히 구타사실을 인정하며 게다가 ‘파이트 머니’라는 나름의 주석 까지 붙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맞겠다고 계약을 한 뒤에 때렸기 때문에 큰 잘못은 없다’는 식의 항변이었습니다. 그리곤 탱크로리 기사 유홍준 씨가 복직 문제와 탱크로리 매각 문제로 자신들을 힘들게 했다는 나름의 구타 배경도 장황하게 반복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때린 것은 잘못이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구타의 계약은 그 자체로 성립되지 않습니다. 법 조항은 알고 계시지요?”
저의 이 한마디에 그 측근은 낙담한 듯 전화를 끊었지만, 구타의 주인공과 그 방조자들의 비상식적인 태도는 후속취재를 불가피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믿을 수 없는 자신감의 근원은 곧 풀렸습니다.
“직원들은 머슴이다. 머슴들은 잘 먹여야 한다.”
전직 직원들은 최철원 전 사장이 평소에 했다는 이 발언을 털어놓으며 자신들이 직접 겪거나 목격했던 구타피해까지 줄줄이 고백했습니다. 생각은 행동을 규정한다는 평범한 논리 그대로 ‘직원=머슴’이란 발언은 적어도 절반 이상의 궁금증은 해소시켜 줬습니다.
최근 재판이 시작됐습니다. 재판과정에서도 최 전 사장측은 이른바 ‘구타의 계약’이 있었다는 주장을 했다는 후문입니다. 물론 이는 유홍준 씨가 강력히 부인하는 대목이기도 한데, 진실은 법정공방에서 곧 드러날 것으로 기대합니다.
하지만 이런 말초적 진실 여부를 떠나 모든 것이, 심지어 매질까지도 ‘계약’이란 허울을 뒤집어 쓴 채, 돈으로 환산되고 거래되는 추악한 세태가 법정에서도 끈질기게 반복되고 있는 것 같아 답답합니다. 취재기자인 저 역시 구타 고발이라는 또 다른 허울을 쓴 채 언론상을 탄 터라, 역시 알 수 없는 씁쓸함을 피하기 어렵습니 다.
하지만 끝으로 한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서울중앙지검은 탱크로리 기사를 폭행하고 맷값을 건넨 혐의로 구속 기소된 최철원 M&M 전 대표에게 징역 3년과 야구방망이의 몰수를 구형했습니다.”
이는 얼마 전 열린 공판 내용을 전하는 보도 내용입니다. 그런데 ‘야구방망이 몰수 구형?’ 기자생활 13년 만에 처음 들어보는 구형입니다. 정작 몰수를 해야 하는 것은 ‘돈을 주고 구타를 한 행위’와 ‘이를 지켜보고도 침묵한 행위’, 그리고 ‘여전히 맷값 계약을 전면에 내세우는 비양심’이 아닌가요?
구타에 신음했던 탱크로리 기사 유홍준씨와 구타를 경험한 M&M의 전직 직원들. 그리고 지금도 전국 각지에서 비합리적인 계약에 유무형의 고통을 받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한숨이 조금은 줄어들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