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_뉴스부문_쌀직불금보도_MBC 이정신 기자

 시대유감


“선배, 지금이 봉건시대 같다”. 쌀 직불금 문제를 제기한 기사를 보고 한 후배가 쓴 웃음을 지으며 툭 던진 첫 말이, 이런 시대유감이었다.
돈 많은 지주가 돈 없는 소작농의 몫까지 아무렇지 않게 챙겨가는 구조, 그래도 밥줄을 뺏길까봐 아무런 저항도 못하는 소작 농민의 현실이 일견 봉건적이기도 하다. 최첨단 자본주의에 살고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시간이 갑자기 몇 백 년 정도는 후퇴한 듯한 불쾌함.
돌이켜보면, 그 때 그 후배의 기분은, 시대에 속았다는 자괴감과 분노가 묘하게 섞여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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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직불금 문제를 통째로 도마에 올려서 까발리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정치권의 첫 정서도 이런 분노였을까? 아니라고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분노가 있었다 하더라도, 앞에선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뒤에선 재빨리 주판알을 튕겼던 건 아닌지 싶다. ‘참여정부가 은폐한 것’이니 ‘강부자 정권이 눈감은 부도덕’이니 하면서 ‘이 문제를 가지고 저 당을 골탕 먹일 수 있다면 우리 당의 인기가 좀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얄팍한 계산. 그 순수한 분노의 에너지마저 정쟁을 위한 건전지쯤으로 간단히 소모할 수도 있는 게 우리 정치권 아닌가.


국회 쌀 직불금 국정조사를 보면, 정말 걱정이다. 별 성과도 없이 서로 남 탓하며 여태 공전이다. 모두 철저한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는 있지만, 규명의 포인트가 여야 각 당이 서로 다르다 보니, 자기 당에 불리하다 싶은 것은 애써 피하려고 꾀를 부리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중의 관심도도 많이 떨어진 참에, 시간을 더 끌면서 대충 뭉개고 가도 되겠다는 암묵적 합의를 본 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뭐, 좋다. 그게 우리 정치권의 오래된 습성이라면, 단번에 이상적인 정치권을 기대하는 것도 굉장히 순진한 생각이겠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라도 정치권이 일단 곪아터진 문제를 꺼내놨으니 어떻게든 고치고 수습해서 제자리로 돌려놓겠지 하는 기대는 아직 버리지 않았다.


애당초 쌀 직불금 문제는 정략적으로 접근하면, 정치적으로도 여든 야든 모두 손해면 손해지 득이 될 게 없는 사안 아니었을까? 국민 입장에서 보면, 여권이든 야권이든 쌀 직불금 문제와 관련해서 잘못한 게 있으면 있지, 잘 한 건 없다. 누가 ‘더’ 잘못했고 ‘덜’ 잘못했는지 국민에게 가려달라는 어리석고 염치없는 요구를 하는 게 아니라면, 이쯤에서 정쟁은 그만뒀으면 한다. 정치권이 이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봉건적 역행에 정말 분노했다면, 정쟁을 접고 다시 그 순수한 분노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MBC 이정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