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뉴스부문_해군 초계함 천안함 침몰 사건_YTN 김문경 기자

‘백령도 순찰 해군 초계함 침몰중’
2010년 3월 26일 금요일밤 10시 24분쯤.  YTN 화면에 뉴스속보로 전해진 한 줄 기사는 영원히 내 가슴속에 남아 있을 것 같다. 장문의 기사나 설명이 필요 없는 그 날 한 줄 속보는 세상 사람들에게 각인된 한 장의 사진과 비견될 만한 것이었다는 생각이다. 그 날 밤엔 ‘천안 함’만 침몰한 게 아니었다. 우리 사회 여러 시스템도 함께 침몰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해바다에 이상이 생겼다는 취재원의 연락을 받고 이를 확인하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직감적으로 확신을 한 뒤 3~4군데 복수의 관계자로부터 확인을 한 뒤 속보 자막을 띄우고 곧바로 전화연결에 들어갔다.
국방부 출입기자에게 비상연락을 취한 뒤 PCC급 초계함, 1,500톤 급 천안함, 탑승 승조 원 100여 명, 청와대 안보관계 장관회의 등의 팩트가 속속 들어왔다. ‘침몰중’이란 속보를 보 낼땐 이번 사건이 이렇게까지 확대되리 라고는 전혀 예상을 하지 못했다. 접적지역에서 군함 이 침몰중이긴 했지만 여러 변수가 있었기 때문이었고, 침몰중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탑승 장 병들도 안전하게 구조될 수 있었을 걸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속보를 띄우고, 전화연결이 끝나도 다른 방송은 물론 연합에서 조차 해당 기사는 올라오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내가 오보를 질렀나’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믿고 있던 취재원들이었 기에 괘념치 않았다. 30분 가까이 지날 무렵 연합은 물론 공중파들의 화면에서 차례로 속보 가 떠올랐다. 타사들이 1보를 띄울 무렵 YTN은 이미 특보체제가 가동되기 시작했고, 보도 국엔 전사(?)들이 속속 모여 들고 있었다.
이번 사건은 시간차 특종에 불과할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 바로 알 수 있는 사안이었던 만큼 발품 팔아 얻은 노력을 바탕으로 쓴 기사가 아니다. 기자상을 받을 정도의 수준은 아니 었을 법도 하여  ‘천안함 1보’가 이달의 방송기자상으로 뽑인데 대해 쑥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지난해를 돌이켜 보면 1년 가까이 국방부 출입을 하면서 부지런히 청사를 돌아다녔 던 결과가 ‘천안함 1보’로 이어진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당시 ‘이동형 무선중계기 구매사업 수사’, ‘해군 급식비 횡령 의혹’, ‘불곰사업 관련 한국형헬기 사업 문건 유출’과 계룡대 근무지 원단 납품비리 의혹 관련한 군 검찰단의 “수사팀에 협박과 회유 있었다”는 ‘내부 문건’을 입수 해 기사화 하는 등 여러 단독기사를 쓰기도 했다. 이 가운데 ‘한국형 헬기 사업 문건 유출’ 문 제는 당시 많은 언론에서  인용 보도를 했었지만 개인적인 기사로 만족을 하고 말았다.  시간을 두고 추가 취재하던 중에 출입처를 국회로 옮겨와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만 신문에 비해 출입기간이 짧은 방송 기자로서 나름 열심히 했다는 자평을 하고 있다.
지난해 국방부를 떠날 무렵 김태영 국방장관이 새로 취임한 뒤 가진 기자단과의 오찬 모임에서 ‘군은 아직 멀었다’는 내용의 건배사를 건넸다. 여러 상황을 종합한 건방지고도 개인적인 견해를 피력한 것에 불과했지만 군이 이번 사건에 대처하는 자세를 보면서 아쉬운 부분이 너무 많다.
‘천안함 1보’ 이후 자체 취재를 통해 민감한 내용들도 여러건 확보했다. 주로 이번 사건의 원인과 관련된 부분이다. 하지만 정확한 증거없이 기사화할 경우 오히려 더 혼란을 부채질할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마음속에만 묻어 두었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국방부의 조사결과가 어떻게 나올 지 관심이다.
천안함 침몰 사건은 여러 후폭풍이 예견돼 있다. 접적지역에서 46명의 사망·실종이라는 해군 역사상 초유의 사건임은 물론, 침몰원인을 둘러싼 조사결과도 국내외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천안함 1보’를 쓴 죄(?)로, 그 이후 국회 출입처를 버려두고(?)  한 달 가까이 방송출연 에 몰두하면서 사내에선  군인 아니냐는 소리도 듣고 지냈다. 몸은 지쳐 갔지만 실종자와 유 가족들을 생각하면, 이번 사건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무책임하게 지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어 서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냈다.   방송기자로서 속보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 지, 그리고 속보 자체가 ‘발품기사’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취재원은 관리 대 상이 아니라 신뢰대상이라는 점도 아로 새겼다.  그래서 이러쿵 저러쿵 할 얘기가 많지만 지 금은 지켜 보기로 했다.
3월 26일 밤샘 출연으로 야근을 하고 퇴근한 다음날 밤엔 가위에 눌려 잠에서 여러 차례 깨어났다.  20여 년 전의 군 생활이 뜬금없이 나타나기도 했고,  후속기사의 압박감 때문이 었는 지도 모르겠지만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많은 승조원들이 스쳐 지나갔다. 차디찬 밤바다 에서  비통하게 쓰러져간 희생장병들의 명복을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