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기획보도부문_ 사망지도_KBS 김정환 기자

탐사 보도물이 ‘권력과 자본의 감시’ 기능에 충실하고 그와 관련된 아이템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외국의 경우, 시청자들의 실제 생활에 밀접한 주제를 다룬 탐사보도물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취재진은 국민들의 생활에 보다 밀착된 주제가 없을까 하는 고민 끝에 우리나라의 교통 사고 실태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교통사고가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 사망자 수는 OECD 4위, 보행자 사망사고는 1위를 기록하고 있고 최근 사망자 감소 추세는 둔화되고 있다. ‘교통사고를 반으로 줄입시다’, ‘안전벨트는 생명벨트’ 이런 캠페인성 정책만으로는 교통사고를 줄이는 데 한 계에 와 있다는 게 취재진뿐 아니라 전문가들의 공감대였다.
방송 보도물이니만큼 영상 관련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프로그램에는 실제 교통사고 순간의 영상이 포함됐다. 그 영상은 요즘 장착이 늘고 있는 차량 주행 ‘블랙박스’ 그림이다.
취재진이 입수한 블랙박스 영상은 100개 정도 됐고 선정 작업을 거쳐 프로그램에 반영됐다. 주로 영업용 택시에 달린 블랙박스 영상이었는데 택시공제조합을 통해 입수했다. 소송에 걸려있는 교통사고 등 민감한 케이스도 있었기 때문에 조합측은 처음에 화면제공에 난색을 표했다. 우리는 시간을 두고 조합 측을 설득해 나갔다. 2주에 걸쳐 프로그램의 취지를 설명 한 끝에 영상을 입수할 수 있었다.
화면 사용에 있어서 제작진의 고민도 깊었다. 어떤 영상은 한 사람의 죽음이 담겨있기도 했다. 사망 순간이 기록된 영상이었다. 교통사고가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느낄 수 있었다.
다소 충격적인 장면이 될 수 있지만 제작진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사용할 그림들을 골라 냈다. 방송이 나간 후 내부에서도 교통사고 그림이 다소 끔찍해 보기가 거북했다는 반응도 나 왔다. 하지만 외국의 경우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공익광고나 다큐멘터리에 더 충격적인 영상이 나가는 경우도 많다. 우리는 그 영상이 나감으로써 이를 본 많은 사람들이 안전 운전에 더 신경 써 교통사고를 피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이 몇 명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5명은 확실히 그 사고 영상이 안전의식을 높여 줬다. 이번 프로그램을 함께 제작한 존경하는 선배 김태형, 박중석 기자, 장세권 촬영기자, 동기 김경래 기자, 그리고 바로 나다. 현재 서울대 교수와 교수출신 공직자들의 연구윤리를 다루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새벽 3~4시에 귀가하는 경우가 많은데 차를 운전할 때마다 나는 그 사고 영상들을 떠올린다.
4살 때 교통사고를 당해 평생 하반신이 마비된 채로 살아야하는 15살 한결이 얘기도 빼놓 을 수 없다. 한결이 부모는 처음에 취재를 허락했지만 취재 바로 전날 응할 수 없다고 통보해 왔다. 그 모습이 전 국민이 보는 방송에 나간다는 부담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작진의 입장에선 난감했다. 취재는 하지 않아도 좋으니 한결이를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어 머니께 말씀드렸다. 거의 집 안에서만 지내는 한결이, 얼마나 바깥이 그립겠는가. 바깥에서 사람들이 만나러 와주는 것만으로도 한결이에게는 일상 탈출의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가서 세상사는 이야기, 기자, 방송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그 무료함을 몇 시간만이라도 덜어 주고 싶었다. 한결이를 만나기 전에 무슨 선물을 사갈까 고민했다. 김태형 선배가 KBS 캐릭터 상품인 ‘1박 2일’ 마크가 새겨진 티셔츠를 사가보라고 했다. ‘1박 2일’ 티셔츠와 모자 두 개를 사줬는데 한결이는 그렇게 좋아할 수 없었다. 채 2만 원이 들지 않은 작은 선물이었는데… 몇 장 더 살 걸… 후회됐다.
예상대로 한결이는 사람들을 그리워했다. 한참 사춘기고 내성적인 성격 탓에 말수는 적었지만 내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눈을 반짝이고 잘 들었다. 결국 어머니는 취재를 허락 했고 취재 당일 날 ‘1박 2일’ 티셔츠를 몇 장 더 선물했다. 한결이는 영화 ‘아바타’를 보고 싶어 했다. 하반신이 마비된 주인공이 아바타를 움직여 뭘 한다는 내용을 인터넷을 통해 접한 한결이는 그 영화에 관심이 많았지만 극장 나들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승합차 두 대를 가져가 한결이 가족 전부를 서울로 데려와 점심을 함께 먹고 영화도 봤다. 그 과정이 프로그램에 반영됐다. 한결이가 차에서 타고 내리고, 극장에 들 어갈 때 한결이를 들어 옮겨야 하는 상황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장세권 촬영기자가 그 일을 도맡아 했다. 내가 하겠다는 데도 자기가 하겠다고 고집했다. 아들 둘을 키우고 있는 장 선배의 마음이 느껴졌다.
이번 방송에는 GIS(지리정보시스템), CAR, 정보공개청구 등 탐사기법이 총 동원됐다. GIS를 분석해 교통사고가 많이 나는 곳을 찾아다니며 취재를 하다 보니 실제 교통사고 현장을 2번 목격해 영상에 담을 수 있었다.
이번 취재를 하면서 우리나라의 교통안전 정책이 얼마나 취약한지 절감할 수 있었다. 투자를 해봤자 금방 효과가 보이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당국의 교통안전에 대한 투자는 뒷전에 밀려 있었고 의지도 약했다. 언론의 책임도 많다. 한두 명 숨지는 교통사고는 이제 거의 가사로 나가지 않는다. 교통 사망사고를 대서특필하는 외국의 경우와 대조적이다. 생명과 직결되는 교통사고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을 다루는 취재물들이 많이 나오길 바라며 우리도 계속 관심을 기울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