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뉴스부문_현대차 납품단가 깍기_MBN 윤호진 기자

지난해 경기침체로 전 세계 자동차업체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현대기아차는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었다. 중국, 인도 등의 신흥시장에서의 선전은 물론, 특히 미국 시장에서의 시장점유율 상승이 괄목상대할 만했다. 일본 차에 눌려 기 한 번 제대로 못 펴던 ‘우리 차’가 ‘극일’할 기세였으니, 산업계는 물론 언론도 고무됐을 터! 언론 지면엔 연일 ‘우리 차’에 대한 용비어천가가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의문이 들었다. 현대기아차의 실적이 우리 국민에게, 우리 소비자에게는 어떤 이득을 가져다 주는 것일까? 해외 기반이 넓어지면, 현대기아차가 국내 소비자를 위해 차 값을 조금이라도 내릴까? 그들의 실적이 함께 고생한 납품업체와 협력사에는 합리적으로 분배되고 있을까?
의문, 그리고 막연한 추측을 해소할 기회는 우연히 찾아 왔다. 산업연구원이 ‘현대기아차 납품업체들의 현황과 문제점’을 분석한 내부 자료를 입수하게 된 것. 자료를 통해 본 실상은 예상보다 심각했다. 영업이익률은 물론, 기업의 자금 흐름을 보여주는 유동성이 현저히 낮았고, 부채비율은 지난해 사상 최악의 파업 사태를 겪은 쌍용자동차의 납품업체들보다도 높았다. 현대기아차의 거래상 지위 남용이 의심되는 대목이었다. 이 자료 만으로도 의혹을 제기 하기엔 충분했다. 그러나, 자료 속 ‘숫자’ 뒤에 숨은 실상을 밝히기 위해선 보다 철저한 현장 검증이 필요했다.
취재는 막연했다. 매출 1천억 원이 넘는 협력사들을 선별해 무작정 만나기 시작했다. 카메라 없이 ‘무장해제’한 상태였지만, 그들의 경계심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끈질긴 대화 끝에 마침내 하나 둘, 현대기아차의 부당한 납품단가 인하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매출 1천억 원을 넘겨도, 수십 년 동안 자동차 부품 개발의 외길을 걸어왔어도 영업이익률은 1%를 넘기기 어 려운 현실’. 그들이 밝힌 현대기아차의 납품단가 인하 방식은 놀랍도록 똑같았다. 협력사의 재무제표를 펼쳐 놓고 영업이익률을 근거로 단가를 내린다는 것. 매출 규모와 상관 없이 협력사들의 영업이익률이 바닥을 길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본격적인 취재가 시작됐고, 그렇게 만난 다른 현대기아차의 납품업체들도 동일한 불만을 토로했다. 그리고 생생한 그들의 증언을 확보했다. 하지만, 또 다른 의문이 들었다. ‘시장의 파수꾼’, 공정거래위원회는 뭘 하고 있는 걸까? 이런 무질서함을 인지하고는 있는 걸까? 현실은 반대였다. 공정위는 취재가 시작되기 전, 이미 현대기아차를 최우수상생협력사로 지정했다. 그리고 최우수상생협력사로 지정되면 2년 동안 불공정하도급거래에 대한 직권조사가 면제된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듣게 됐다. 대기업의 횡포, 그리고 ‘면죄부’를 준 정부. 현대기아차 의 납품중소기업들은 ‘상생’을 요구할 마지막 통로마저 차단된 신세였다.
보도가 담은 얘기는 여기까지다. 하지만, 취재는 끝나지 않았다. 아직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국내 시장점유율 80%를 차지하고 있는 현대기아차가 ‘독점기업’이 아닌 ‘국민기업’ 이란 세간의 평가를 받을 때까지, 그리고 공정한 시장 질서를 세우려는 정부의 의지가 오롯이 반영될 때까지, 취재는 계속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