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기획보도부문_99엔의 내막_MBC 김경호 기자

후생연금 탈퇴 수당 99엔. 우리 돈 1,300원. 13살 어린 시절 먼 타국 땅까지 강제로 끌려 가  혹독한 노역에 시달린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에게 일본이 65년 만에 보내온 돈입니다.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이런 일이 어떻게 벌어질 수 있었던 것일까. 이 궁금 증이 취재를 시작하게 된 동기였습니다.
취재를 시작하고 얼마 후,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우리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에게 모욕적인 99엔이 지급된 시기, 함께 일본으로 끌려갔던 중국인 강제 노역자들에 대해선 일본 기업이 수십억 원의 보상금을 지급하고 사죄한 것이었습니다. 해당 기업의 강제 노역자 가 운데에는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많이 포함돼 있었지만, 이들에 대해선 단 한 푼의 보상금 지급도, 어떠한 사과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일본과 중국 현지를 찾아가 해당 기업과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고, 피해자들을 취재하면서 궁금증은 점차 분노로 바뀌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에 대한 분노가 아닌, 바로 우리들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일제시대 비도덕적인 전범 기업들에 대한 중국의 ‘과거사 정리’ 입장은 확고했습니다. ‘경제보다 과거사 정리가 먼저’라는 중국 정부. 전범기업들과는 합작도 하지 않겠다는 중국 기업. 그리고 이에 대한 중국인들의 확고한 지지가 결국 중국 진출을 추진해온 일본의 전범기업들로 하여금 스스로 사과와 보상을 하도록 만든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우리의 현실은 너무나 처참했습니다. 수십만 명의 강제 노역자들을 끌고 가고도 어떠한 사과도 하지 않는 전범 기업에게 백억 원이 넘는 국책 사업을 넘기고, 기업들은 앞다퉈 이들과의 합작에 뛰어들고, 국민들은 어느 기업이 전범기업인지도 모른 채 해당 기업의 제품 을 구매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었습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에게 지급된 99엔은 과거를 망각한 우리가 낳은 참사였습니다.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유골 문제는 더 심각했습니다. 일본에서 강제 노역도중 숨진 피해자 들에 대해 중국은 전쟁 직후 대대적인 발굴과 봉환 작업을 벌여 수천 명의 유골을 중국 국내로 모셔간 뒤, 대규모 기념관에 안치해놓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우리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정부 차원의 발굴, 봉환 작업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국회는 그나마 예정돼있던 봉환 사업 예산마저 전액 삭감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 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현지에서 한국인 유골들의 한을 달래주고 있는 것은 일본인들이었습니 다. 일본의 양심적인 지식인들은 자비를 들여 한국인 유골들을 발굴하고, 기념관을 건립하며 전범 기업과 일본 정부에 대해 지속적인 시위와 소송을 통해 압박을 가하고 있었습니다.
강제 징용 문제에 무관심하기는 우리 언론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속적으로 강제 징용자 문제를 추적 보도해,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99엔 문제와 유골 문제 등을 보도해온 것은 다름 아닌 일본의 한 언론이었습니다. 오히려 우리 언론들은 과거사에 대한 중요한 문제가 나와도 작은 단신으로 처리하거나 아예 보도조차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방송 이후 시청자들의 반응은 매우 뜨거웠습니다. 유골 봉환에 대해 네티즌들의 청원과 서명 운동이 벌어지고, 우리 정부와 국회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습니다. 가장 많았던 의견은 ‘너무도 부끄러워 방송을 보기가 고통스러웠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의 상황을 만든 것은 어느 특정인이 아닌 우리 모두의 책임이었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일본의 한국 강제 병합 1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그러나 일본과의 과거사 정리가 더욱 활발히 이뤄지기는커녕 오히려 그나마 있던 과거사 규명 위원회들마저 줄줄이 문을 닫고 있습니다. 65년 동안 해결되지 못한 과거사 정리 문제는 지금까지도 끝없이 많은 아픔과 슬픔을 낳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답답하고 안 타까운 마음이 쉽게 가시지 않습니다.
좋은 방송 할 수 있도록 믿어주신 데스크진과 어려 운 여건 속에서도 언제나 곁에서 힘을 주는 장선아 작가, 몸을 아끼지 않고 혼신의 노력을 다해주신 김성식 감독님과 이승헌 PD님 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