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뉴스부문_유명사립대 장학금 조작_SBS 최우철 기자

지난해 말 중앙대학교엔 이상한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받지도 않은 장학금 2백여만 원이 지급된 걸로 처리됐다며 해명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전화. 교직원들은 학생들에게 이렇게 답했다. “동문끼리  돕는다고 생각합시다. 학교 순위가 올라가면 학생도 좋잖아요.” 애교심에 호소하는 해명이 ‘약발’을 발휘한 걸까? SBS 사건팀의 취재에 응한 1명의 졸업생이 나타나기 전까지 누구도 이 사실을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보도로 공개된 장학금 부풀리기 규모는 쉽게 지나칠 사실이 아니었다. 가령, 360만원 이 등록금인 학생이 9학기를 다닐 때, 10학점 미만 수강학생은 100여만 원을 낸다. 하지만 학교 측은 이 학생이 마치 등록금 전액을 납부한 뒤 장학금으로 2백여만 원을 돌려받은 걸로 처리한다. 중앙대에서만 지난해 2천여 명이 장부상의 장학금으로 둔갑했다.
엄청난 회계부정이 어떻게 이토록 조용히 진행될 수 있는 걸까? 의문을 가질 새도 없었다. 중앙대의 장학금 부풀리기가 2004년부터 고려대가 해온 회계방식을 벤치마킹한 사실이 취재됐다. 기자 는 2001년부터 고려대를 다니다 재작년 졸업했다. 고려대는 학칙 상 문제될 게 없다는 해명을 했다. 2백만 원 넘는 이 돈이 장학금이라면, 어떤 공적으로 받게 된 것인지 알아야 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장학금이 아니라 학비감면액이라는 답변이 나왔다. 장학금은 장학금인데, 장학금이라 생각하 지 마라? 9학기 넘게 수강하는 학생들에게 학비를 감면해주라는 규정이 생기기 전부터 학비를 알아서 감면해 줬으니, 본래 취지는 좋은 것이란 답변도 덧붙였다.
학칙은 그럴지 모르나, 명백한 회계 조작이었다. 장학금 지급 통계란 대학 입장에서 보면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수치다. 대학 홍보에 등장하는 ‘장학금수혜율’만 놓고 봐도 그렇다. 장학금 부풀리 기로 학생복지의 질을 부풀릴 수 있다. 장학금수혜율의 분모는 장학금을 한 번이라도 받아본 학생 의 숫자다. 분자는 물론 재학생 숫자. 1학기에 9학기 이상 수강하는 천 2백여 명의 졸업예정자들이 장학금 수혜자로 둔갑한다. 수혜율이 껑충 뛸 수밖에 없다. 지난해 58.6%라는 고대의 장학금수혜율엔 장부상 장학생이 수천 명 들어있다.
여기까진 홍보 수단이다. ‘장학급지급률’ 통계는 돈을 부른다. 취재 과정에서 많은 조언을 준 이병 희 선배가 이 사실을 밝혀냈다. 지금 장학금 총액을 학생들이 낸 등록금 총액으로 나눠서 나오는 수치가 장학금지급률이다. 대부분 대학은 10% 안팎이거나 그보다 훨씬 못 미치는 지급률 수준을 보이고 있다. 고대와 중대는 공교롭게도 이처럼 부풀려진 수치로 지난해 교육과학기술부의 대학 역량강화 사업에서 30억 원 넘는 지원금을 챙겼다. 장학금지급률은 선정 기준의 20%를 차지하는 주요항목이었다. 보도가 나간 뒤 교과부는 전국 모든 대학에 실태조사를 진행 중이다. 이병희 선배와 함께한 이틀간의 공동취재 내내 스트레이트 기사의 힘을 다시 느꼈다. 기사가 관행을 고치고 있었다.
기자가 고려대에 재학하던 몇 년 전 일이다. 학교당국이 갑자기 수업에 방해된다며 중국집 배달을 막아버렸다. 배달받은 자장면은 대부분 잔디밭에서 먹는다. 학생들은 새로 심은 외국종 잔디보호를 위한 억지 방침이라며 항의했다. 배달 길은 다시 열렸고 학생들은 잔디밭을 되찾았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시절 학교는 부지런히 가짜 장학금 분모를 만들고 있었다. 우리는 자장면과 잔디밭을 되찾았지만, 당연히 감면받아야 할 학비가 장학금으로 둔갑하는지는 몰랐다. 배달길 이 막힌 건 쉽게 알려졌어도, 장학금 부풀리기는 쉽게 알 수 없었다. 법으로 정해진 10%의 장학금 지급률. 고대는 늘 이 수치를 훌륭히 채웠다. 그 사이 학생들은 잔디밭에서 등록금이 없어 휴학하 는 친구들을 수없이 떠나보냈다. 제대로 된 통계가 장학금지급률을 조금이라도 높였다면, 그런 아 쉬운 자리는 줄었을지 모른다.
졸업을 한 뒤에 외부에서 바라본 고대 캠퍼스는 전보다 더 조용하다. 중앙대에선 커뮤니티 폐쇄나 새터 폐지처럼 학내 민주주의가 실종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장학금 부풀리기는 학생들 스스로 문제제기를 했다면, 고칠 수 있는 관행이었다. 그런데도 그러지 못했다. 대학이 점점 폐쇄적 이고 권위적으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학생들의 권리는 그만큼 제약받고 있다는 얘기다. 취재를 하는 동안 대학들은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으로 일관했다. 기자에게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기자에게도 이렇게 대하는데, 학생들에겐 오죽하랴. 대학 안팎의 비판이 없다면, 학칙이란 이름 아 래 그릇된 관행은 편법과 위법으로 이어질 것이다. 지성을 쫓는 대학에선 예비 지성인인 대학생도, 비판과 감시가 업인 기자도 밥 먹듯 비판해야 한다. 사랑한다면 눈 감으라고? 아니다. 사랑하기 때 문에 비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