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3회_뉴미디어부문_대한민국 나쁜 집주인 리포트_MBC 이준희 기자

<‘빌라왕’이 짓밟은 892개의 꿈>
 
전세는 영어로도 ‘전세(Jeonse)’입니다.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라 번역할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서민들은 전세를 통해 차곡차곡 돈을 모으면서 내 집 마련의 ‘꿈’을 꿀 수 있습니다. 전세제도는 공식기록만 따져도 100년이 훌쩍 넘게 유지돼왔습니다. ‘전세보증금은 반드시 돌려받는 돈’이라는 신뢰가 우리 사회에 단단하게 자리잡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번에 ‘빌라왕 김OO씨에게 당한 피해자들도 자신의 전세금을 못 돌려받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하지만 모친과 함께 무려 892채를 사들인 김 씨는 세입자 892명의 ‘꿈’을 판돈 삼아 위험한 도박을 벌였습니다. 피해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MBC 기획취재팀은 이 같은 일이 어떻게 가능했고 대책은 무엇인지를 촘촘히 들여다봤습니다. 이를 통해 ‘전세금 미반환 사고’에 대한 두 가지 인식을 반박하고 싶었습니다.
 
# “당한 사람이 바보 아냐?”
전세금 사고가 터질 때마다 일부 사람들은 ‘그러게 잘 알아보고 전세를 구했어야지’라며 피해자 탓을 합니다. 하지만 저희 취재결과 피해 세입자들도 충분히 잘 알아보고 계약을 했습니다. ‘빌라왕’ 김 씨 소유 주택 세입자 98%는 확정일자를 받았고, 95%는 전입신고도 했습니다. 집을 담보로 집주인이 대출받은 건 없는지도 꼼꼼히 살폈습니다. 그러나 집주인이 위험천만한 투기꾼인지는 몰랐습니다. 영국 등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임대인의 보증금 사고 발생 내역이나 체납 실적 등이 세입자에게 공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입자들이 집주인에 대해 들은 거라곤 ‘집이 아주 많은 사람이니 걱정 말라’는 중개업소의 말뿐이었습니다. 이번에 개설한 인터렉티브 사이트 ‘대한민국 나쁜 집주인 리포트’에 담긴 피해자 6명 사연만 봐도 왜 이 문제가 ‘누구나 당할 수 있는 문제’였는지 잘 나타납니다.
 
# “정부가 나설 일은 아니잖아”
단지 집주인과 세입자 문제에 정부가 꼭 나서야 하느냐는 얘기도 일각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김 씨의 주택 매입 시기를 보면 정부의 ‘원죄’가 잘 나타납니다. 김 씨 소유 임대주택 중 주소지를 알 수 있는 653채를 살펴봤더니, 98%의 매입이 2015년부터 4년 동안 이뤄졌습니다.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세제 혜택을 줘가며 임대주택 활성화 대책을 추진한 시기입니다. 실제 김 씨 주택 87%는 취득세가 0원, 95%는 종합부동산세가 0원이었고, 재산세는 60%가 0원, 35%는 절반만 내면 됐습니다. 정부의 임대주택 장려책이 무자본으로 주택을 수백 채 사들이는 걸 가능하게 했고 결과적으로 갭투기 피해를 키운 겁니다. 정부가 손 놓고 있는 사이 ‘빌라왕’들은 단체 대화방까지 만들어 정보를 공유했고, 압류된 집을 ‘단기월세’로 운영해 수천만 원의 수익을 거두기까지 했습니다.
 
보도 이후 정부는 악성 임대인 정보 공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HUG도 ‘불법 단기월세’ 방지 대책을 세우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피해를 입은 세입자들은 전셋집을 떠안아야 할지도 모르는 불안감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추가 대책이 나올 수 있도록 후속 보도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희 4명만 잘해서 받는 상이 아니라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한 달간 함께 고생한 구나연, 김민경, 이승주, 정다현 리서처, 취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여건을 제공해준 MBC 탐사기획에디터, 기획취재팀장, 팀원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