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2회 기획보도부문_동남아 K-신문 열풍의 비밀_MBC 박진준 기자

뜯지도 않은 신문, 해외로 싹쓸이
지난 4월, 한 신문 폐지 업자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그 업자의 첫마디는 “진짜 해도 너무한다”는 탄식이었습니다. 아침에 인쇄돼 신문지국으로 배송된 신문이, 독자들에게 배달되는 게 아니라 바로 폐지 업체로 직행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0대 일간지부터 각종 경제지까지 모든 신문이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당장 대형 폐지 업체를 수소문해 현장으로 나가봤습니다. 마당 가득 산처럼 쌓여 있는 신문들, 모두 비닐조차 뜯지 않은 새 신문들이었습니다. 한 쪽에는 대형 컨테이너를 가져다 놓고, 쉴 새 없이 신문을 실어 나르고 있었습니다. 모두 해외로 팔려나가는 것들인데, 이 업체에서만 일주일이면 20톤짜리 컨테이너 서 너개 정도의 물량이 팔려나갔습니다. 동남아시아는 물론아프리카까지 팔려나가는데, 전국이 다 마찬가지라니 팔려나가는 물량이 어마어마했습니다.
도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쓰이는 걸까. 코로나19로 해외 취재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취재진은 태국과 필리핀, 파키스탄 등 현지 교민 사회 접촉을 시도해 사실 확인에 나섰습니다. 하나 둘 현지 영상과 사진들을 통해 해외의 현실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필리핀 한 재래시장의 과일 가게에서는 모든 과일을 한국 신문으로 포장해뒀습니다. 낱개 포장부터 박스포장까지 전부 한국의 새 신문들이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올해 초 발행된 조선, 중앙, 동아 등 국내 일간지들을 또렷하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나라에서는 거리 음식을 그대로 포장해 주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실제 현지 업자의 창고 영상도 확보했는데, 어마어마한 양의 한국 새 신문을 쟁여놓고 팔고 있었습니다.
 
본사의 밀어내기폐지 장사로 근근이 버티는 신문 지국
왜 이렇게 많은 신문이 해외로 수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내 사정이 궁금했습니다. 신문 유통의 현실을 가장 잘 아는 곳은 바로 일선 신문 지국들입니다. 취재진은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새벽에 한 신문 지국을 찾았습니다. 갓 인쇄된 신문들이 속속 도착하고, 분류 작업이 한창 진행됐습니다. 그런데 한쪽에 배달되지 않은 새 신문 뭉치들이 수북이 쌓여있었습니다. 모두 폐지 업체에 팔려고 모아둔 것이었습니다. 놀라운 건 본사에서 팔라고 지국에 보낸 신문의 절반가량이 매일 그렇게 폐지 업체로 팔려나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신문 지국장들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지국 운영이 안 되는 현실을 고스란히 털어놨습니다. 신문 보는 사람은 없는데, 본사에서는 계속 판매 부수를 줄여주지 않으니 신문값을 충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더 황당한 건 지국에서 힘드니까 신문 판매 부수를 줄여달라고 본사에 요구하면 오히려 신문을 더 줄테니 팔아서 충당하라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겁니다. 조중동은 물론 대부분의 일간지가 똑같았습니다. 신문을 보라고 인쇄하는 게 아니라 마치 무가지로 나눠주거나 지국의 생계유지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었던 겁니다.
 
유료 부수는 조작됐다
신문사들이 이렇게 신문을 발행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유료부수 평가 때문이었습니다. 국내에서 신문의 영향력을 평가하는 유일한 잣대로 사용되는 것이 바로 각 신문사의 유료부수입니다. 독자가 얼마나 되는지, 그래서 얼마나 인쇄하는 지가 평가 지표가 되는 겁니다. 이는 광고 수익과 직결됩니다. 독자가 많아야 광고 효과도 좋다는 공식이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문들 입장에서는 보지도 않는 신문을 기계처럼 찍어내고 있었습니다.
국내에서 신문들의 유료부수를 평가하는 일은 ABC협회에서 담당하고 있습니다. 역시 국내 유일한 기관입니다. 그런데 협회에서 인증한 각 신문사의 유료부수가 조작됐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ABC협회에서 수십 년 해당 업무를 담당해 온 내부직원의 폭로가 있었던 겁니다. 취재진은 이 내부자를 만나, 조선일보 등 신문들이 부수를 어떻게 조작해 보고했는지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부수를 늘리려는 신문사들의 술수는 불법의 경계를 넘나들었습니다. 특히 종이 신문을 구독하는 사람들이 확연하게 줄고 있는 현실에서 조선일보의 유료 구독자가 약 110만 명이 넘는다는 ABC협회의 인증은 조작이 아니고서는 나올 수 없는 수치라는 폭로는 충격이었습니다.
 
이상한 ABC협회장의 행보
정부에서는 각 신문사에 ABC협회의 기준을 근거로 광고비를 지출하고 있습니다. 결국 국민 세금의 집행 기준이 되는 겁니다. 그런 협회의 평가가 공정하지 못했다는 내부자의 주장은 큰 파장을 가져왔습니다. 특히 협회의 파행 운영과 편파 평가는 현 협회장이 취임하면서 가속됐다는 내부자들의 증언은 줄줄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현장 조사를 나가는 직원들에게 회장이 직접 전화를 해 간섭을 하고, 현장 조사원을 회장이 직접 불러 압박하는 등 공정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취재진은 회장을 찾아 나섰습니다. 협회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을 확인하고 기다렸지만, 직원들에게 쫓겨나기 일쑤였습니다. 수차례 전화 끝에 어렵게 통화가 됐지만,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이 아닌 호통만 돌아왔습니다. 보도 후 협회의 이사회 파행, 문체부의 감사 등 시끄러운 소리가 들여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협회 스스로가 개선을 위해 움직이겠다는 변화의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대안에 대한 고민을 담다
많은 언론인들이 부러워하는 언론이 있습니다. 바로 뉴욕타임즈입니다. 뉴욕타임즈는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혁신 보고서를 몇 차례 내놨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접속 클릭 수를 높이거나 소액 광고를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강력한 저널리즘 콘텐츠를 공급해 독자들이 기꺼이 돈을 내고 우리 기사를 읽게 하는 것”이란 불변의 방향성이었습니다.
국내 언론의 현실은 어떨까요. 포털이라는 플랫폼에 발목이 잡혀 제목 장사로 조회수 경쟁에 매몰돼 있다는 비판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전문가들도 역시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언론이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덧붙였습니다. 뉴스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은 여전하다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취재진은 이번 보도를 통해 좀 더 제대로 된 저널리즘 구현을 위해 국내 언론들 스스로가 변화를 고민해야한다는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노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