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뉴스부문_국세청, 조선일보에 기사무마 압력_KBS 강민수 기자

안원구 국세청 국장과 처음 접촉을 시도한 것은 지난해 초였다. 당시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그림 로비 의혹과 관련해 안 국장을 만나 취재해보라는 법조 데스크의 지시에 의해서였다. 전화 연락은 됐지만 안 국장은 만나주지 않았고, 한번 만나 달라는 끈질긴 요구에 대한 답은 10개월여 만에 왔 다. 지난해 11월 서울 중앙지검 특수1부가 안 국장의 부인이 운영하는 가인갤러리를 전격 압수수색 한 직후였다.
안 국장 부부는 이미 기자들의 생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소위 얘기되는 내용만 취재해 보도하고 자신들이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점은 쉽게 외면했다며 내게 마음을 쉽게 터놓지 않았다. 집요한 설득 끝에 안 국장이 겪어온 얘기들을 하나 하나 들을 수 있었다. 안 국장이 하는 얘기 하나 하나가 다 엄청난 뉴스였다. 문제는 대부분 안 국장의 진술 뿐, 그 말을 뒷받침할 만한 물증이 없다는 점이었다.
우선 물증이 확실한 것부터 보도해 나가기로 했다. 안 국장이 국세청 감찰관으로부터 사퇴하라며 회유와 협박을 받는 내용을 위주로 2차례에 걸쳐 보도했다. 청와대가 배후에 있다는 국세청 감찰 관의 목소리까지 9시 뉴스를 통해 생생히 보도됐다. 이제는 왜 국세청이, 그리고 청와대까지 들먹 이며 그토록 안 국장의 사퇴를 무리하게 요구했는지 시청자들에게 답을 줄 차례였다. 하지만 여기 서 막혔다. 안 국장의 진술 외에 그 뭔가를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
안 국장이 한상률 전 청장으로부터 인사를 대가로 돈을 요구받았다는 주장, 박연차 세무조사 관련 도움을 요청받았다는 주장, 이명박 대통령이 도곡동 땅의 실소유주라는 문건을 봤다는 주장 등을 들었지만 안 국장 말만 가지고 이를 보도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판단이 서지 않았다. 법조팀 선 배들과 상의해 일단은 안 국장의 말을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거나 입증할 만한 물증을 찾는게 우선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에 안 국장은 검찰에 뇌물 수수혐의로 체 포됐고, 흥분한 안 국장 부인은 야당 정치인들과 온갖 기자들을 접촉해 안 국장이 나에게 했던 얘기들을 쏟아냈다. 아직도 안 국장의 주장을 검증하지 않고 기사화 했었어야 했는지에 대해 스스로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을 정도로 당시엔 혼란스러웠다.
‘딱 떨어지는’ 물증으로 확인할 수 있는 ‘꺼리’를 찾던 나는 월간조선이 나보다 먼저 안 국장을 접 촉해 관련 내용을 취재하고도 보도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특히 어느 정도 완결된 형태의 기사 초안까지 입수할 수 있었다. 기사 내용에는 국세청으로부터 기자와 언론사가 상당한 압력을 받았다는 내용까지 나와 있었다. 해당 기자를 비롯한 관계자들을 광범위하게 접촉한 결과 기사가 보도되지 못하고 있던 시점에 조선일보 사장과 국세청장의 오찬 회동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그 오찬 회동 직전 조선일보 사장 비서실격인 경영 기획실에서 해당 기자에게 기사의 요약본을 달라고 요청해 제공했던 사실까지 확인됐다. 국세청의 집요한 회유와 협박으로 기사화하기 정말 어려웠다는 내용의 기사 초안을 들고 조선일보 사장이 국세청장을 만난 것이었다. 물증과 관련 팩트가 확인된 이상 이제 방송으로 보도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국세청과 유력언론의 기사 뒷거래 의혹’은 미완의 기사다. 일차적으로 확보된 증거에 기초해 관련 정황을 보도했을 뿐, 국세청이 조선일보를 협박한 것인지 조선일보가 국세청을 협박한 것 인지, 아니면 이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주고 받았는지에 대한 심층 취재가 부실했다. 데일리 뉴스의 물리적 한계 등 여러 가지 핑계로 자기 검열을 하고, 진실을 찾기 위해 끝까지 파고드는 기자 정신이 부족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