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9회 경제보도부문_중소벤처기업부 ‘K-바우처 사업’ 부정실태 추적보도_SBS 노동규 기자

한번 쓰고 잊어버릴 수는 없었다

부끄럽게도 쓰고 나면 잊어버리는 일이 많았다. 물론 내가 쓴 기사들이 기억 안 난다는 얘기는 아니다. 신속과 정확이라는, 어찌 보면 양립하기 힘든 가치를 둘 다 놓치지 않으려고 끙끙대면서도 매일 쓴다는 건 극도의 스트레스가 따르는 일이다. 그렇게 쓴 것들은 어느 일선 경찰서에서 외국 음료를 불법으로 들여와 판 업자를 잡았다는 발생 기사까지도 웬만하면 다 기억난다. 문제는 기사를 쓰고 난 뒤다. 취재 과정에서 아무리 많은 공을 들였다 한들 세상에 출고하고 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금방 다른 스토리를 찾아 눈을 돌렸다. 이곳은 매일같이 새 뉴스가 쏟아지는 다이내믹 코리아이기 때문이라거나, 내가 쓰고 싶은 걸 계속 취재하도록 배려하는 자애로운 데스크를 못 만난 탓이라고 한다면 변명이다. 능력이 부족한 탓이 컸다. 훌륭한 기사를 많이 못 썼다는 얘기다. 세상 어느 데스크도 소위 파괴력 있는 기사를 쓴 기자에게 “그건 이제 놔두고 다른 걸 찾아보지?” 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사안을 기사화하고 속보를 이어 쓸 수 있는 것도, 내가 꽂힌 사안을 들입다 파는 행운을 누리는 것도 결국 내게 달린 건데, 그렇게 하지 못했던 거다.

<중소벤처기업부 ‘K-바우처 사업’ 부정실태 추적보도>는 그런 반성에서 나왔다. 이 보도는 사실 앞서 지난해 “관련 사업에서 부정과 예산 낭비가 우려된다.”라고 했던 고발성 보도의 추적 보도다. 고발 보도로 관련 부처 대책 발표와 국회의 720억 원 예산 삭감 등 후속 조치가 있었다. 과분하게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까지 해 어깨가 무거웠다. 그래서 잊지 않고 싶었다. 잊을 수가 없었다. 보도 이후를 챙겨야 했다. 더구나 부정 엄단을 공언했던 정부가 “자진 신고하면 형사 고발은 안 하겠다.”라며 단속 칼날을 스스로 거두고 있는 때였다.

취재 과정에서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다. 윤영석 국회의원실 백창현 비서관은 귀찮은 부탁에도 중소벤처기업부 자료를 신속히 구해줬다. 그 덕에 엉터리 바우처 사업의 전체 규모를 파악할 수 있었다. 누구보다 감사한 분은 신원을 밝힐 수 없는 한 취재원이다. 바우처 판매 내역 전체를 입수할 수 있던 건 전적으로 이 취재원의 깨어 있는 시민 의식 덕분이다. 이로써 비대면 업무와 상관없는 미용실·순댓국집·개인택시 등지로 세금이 낭비된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국민 세금이 이런 식으로 쓰여선 안 되는 거잖아요.”라던 이 시민의 정의감이 눈물 나게 고마웠다.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가 목격한 부정에 눈감고 적당히 시급을 챙길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또 다른 익명의 취재원에게도 감사드린다. 이분이 없었다면 정부 단속 손길을 비웃던 부정 업체의 디테일을 밝힐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문제를 국회에서 다뤄보자고 나선 한무경 국회의원실 정태준 보좌관과 권현정 비서의 예민한 눈길로 정부의 후속 조치가 잘 이행될 거라 믿는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기사가 못 된다는 걸 알면서도 후배 기사를 받아주고 피드백을 아끼지 않은 강선우 보도국장과, 손승욱 탐사보도2부장이 있어 이 기사가 나올 수 있었다. 무엇보다 졸고를 평가해준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린다. 귀한 상을 격려의 의미로 알고 더 정진하겠다.

SBS 노동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