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6회 경제보도부문_- 시사기획 창_회장님의 상속법_KBS 서재희 기자

그 상속, 정당합니까
 
대한민국 재벌 기업들이 2세대 경영인의 퇴진 또는 사망을 계기로 본격적인 3세 및 4세 경영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창업주와 그의 자녀 세대를 넘어, 손주, 증손주 세대로까지 경영권 승계를 이어가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합법적이고 공정한 방식으로 경영권을 물려받은 이들이 얼마나 될까요? 단지 총수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기업을 물려받는 것은 ‘공정’을 화두로 하는 이 시대에 맞는지, 편법 승계가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따져보기로 했습니다.
 
마약을 해도 회삿돈을 빼돌려도어차피 회장
 
기업 현안에 밝은 전문가들의 다양한 견해를 들어보는 것과 함께, 경영권 승계에 관한 국민들의 ‘상식’을 확인해보았습니다. 1천여 명에 대한 설문 결과, 국민들은 재벌 경영권 승계의 최소한의 조건으로 ‘공정성’과 ‘자질’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중범죄를 저지른 총수 일가의 경영 참여를 제한해야 한다는데 찬성한 비율은 90%에 달했고, 최소한 집행유예 기간, 많게는 무기한 경영 참여를 제한하는 게 적절하다고 답했습니다. 이러한 국민 상식을 극단적으로 배반한 경우가 재계 13위 CJ그룹과 43위 한국타이어그룹이었습니다.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장남 이선호 씨는 마약투약 및 밀반입이라는 중범죄를 저지르고도 CJ제일제당에서 고작 ‘정직’ 처분을 받았고, ‘자숙 중’이라는 공식 입장과 전혀 다른 행보를 보였습니다. 이 씨가 최대주주로 있는 회사는 CJ그룹의 인적 물적 지원 속에 1조원 대 해상풍력발전 사업권을 따냈고 투자 사업도 벌이고 있었습니다. 특히 해상풍력발전사업 신청을 위한 서류에는 이선호 씨 본인의 개입 없이 발급받을 수 없는 여러 장의 ‘주식내역서’가 첨부됐고, 발급기준 날짜는 하나같이 이 씨가 2심 판결을 받은 지 불과 나흘 뒤였습니다.
8억 원에 가까운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로 역시 유죄 판결을 받은 한국타이어 조현범 사장은 아버지의 지분을 기습적으로 사들이는 방식으로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했는데, 그 비밀스러운 거래의 이면에는 ‘절세’라는 목적과 회삿돈을 빼돌리는 불법 행위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는 재벌총수의 민낯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상속세가 높다? 신뢰부터 쌓아야.
 
재벌 상속 과정에서 벌어지는 각종 불법 불공정 행위들은 개별 대기업의 가치를 훼손하는 범위를 넘어 전세계 자본시장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편법 상속은 기업을 둘러싼 수많은 이해관계자들 이익 뿐 아니라 국민연금으로 대표되는 ‘나의 노후 자금’을 깎아먹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도덕한 총수일가를 비판하고 견제하는 일이 마치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행위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은 게 현실입니다. 법적 개선의 노력은 더디기만 하고, 오랜 시대에 걸쳐 고질병처럼 자리잡은 편법 상속의 원인이 마치 최근 높아진 상속세율 때문이라고 왜곡되기까지 합니다. 이같은 오해를 해소하고 자본주의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언론이 국민들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재벌 권력의 행위까지 감시해 국민들에게 정확한 판단의 기초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후진적인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일에 보다 많은 관심이 기울여지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