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5회 기획보도부문_학교 냉난방기의 진실_SBS 김희남 기자

학교 냉난방기의 진실
 
다른 곳도 아닌 학교 옥상에서 유해물질이 나오고 있었다니
 
놀랄 일이었다. 인체에 해로운 유해물질이 다른 곳도 아닌 학교 옥상에서 배출되고 있었다니… 지난 9월 초, 취재는 이런 제보와 함께 시작됐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교실에 냉방과 난방을 공급하는 가스 냉난방기(GHP;Gas Heating Pump) 라는 게 있는데, 자동차 엔진으로 도시가스를 연소하는 방식이어서 각종 대기오염물질을 포함한 유해 배출가스가 쏟아져 나오는데도 별다른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현행 학교보건법을 보면 학교는 절대정화구역이어서 출입문으로부터 50m 구간에는 노래연습장, 담배자동판매기 등 어떠한 유해시설도 설치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취재를 시작했을 때 계절은 9월 초가을로 접어들고 있었다. 냉방과 난방을 많이 하는 여름과 겨울철이 아니어서 어떨지 미지수였다. 게다가 코로나 사태로 부분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학교를 상대로 취재에 나서려니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었다. 먼저 문제의 가스 냉난방기를 설치한 학교들부터 파악했다. 취재 결과 전국 2,219개 학교에서 가스 냉난방기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어렵게 학교 측을 설득해 서울의 초, 중, 고등학교 각 1곳씩 가스 냉난방기의 배출가스를 측정할 수 있었다.
결과는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지구온난화 주요물질인 메탄가스는 1,400ppm까지 올라갔고, 초미세먼지 원인물질인 질소산화물(NOx)는 3.000ppm을 넘어섰다. 별다른 환경규제를 받지 않다보니 비용 들어가는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달지 않았기 때문인데, 저감장치를 부착한 자동차의 경우 배출가스 농도가 10ppm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140~300배에 달하는 유해물질이 펑펑 쏟아져 나오는 셈이었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머리 위에서 자동차 수백 대가 시동을 틀어놓고 배출가스를 내보낸다는 생각을 하면 끔찍한 일이었다. 그런데 가스 냉난방기를 설치한 곳은 비단 학교뿐만이 아니었다. 전국 15,000개 건물에서 가스 냉난방기가 대기오염물질을 뿜어내고 있었다. 정치 1번지 국회도 예외가 아니었다. 국회 본관은 물론 새로 지은 소통관 등에 모두 64대의 가스 냉난방기가 보급돼 있다는 사실도 이번 취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 산업부는 전기 아낀다며 유해물질 ‘펑펑’, 환경부는 ”산업부 정책이다“ 발뺌 =
왜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게 된 걸까. 정부는 지난 2011년부터 공공기관에 가스 냉난방기 설치 의무화를 시작했다. 여름철 전력난 해소를 위한 정책의 일환이었는데, 에너지 이용의 합리화라는 측면에서 정책을 추진하다보니 환경적 측면이 고려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폭증하는 여름철 전력 수요를 줄이고 보자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입장과 본연의 규제업무를 소홀한 환경부의 안일한 자세가 ‘교육현장 등 공공기관의 환경오염 의무화‘라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빚어낸 꼴이었다.
공공기관에 추진되고 있는 가스 냉난방기 보급의 실태와 문제점이 SBS 보도프로그램인 뉴스토리와 8뉴스를 통해 잇따라 방송되자 산업부는 환경부 등 유관부서, 관련 전문가들과 함께 대책회의를 갖고 저감방안 마련에 착수했다는 설명자료를 냈다.
일본은 가스 냉난방기를 대기오염방지법상 소형 연소기기로 분류해 질소산화물의 배출권장기준치를 100ppm으로 정해놓고 있다. 도쿄도 등 지자체들도 제품에 저NOx 인증서를 부착하는 등 환경규제와 유도정책을 동시에 펼치고 있다. 이번 보도를 계기로 유해 배출가스의 농도를 구체적으로 규제하는 한편 엔진 노후화에 따른 유해물질 발생을 막을 수 있도록 가스 냉난방기 사용연한과 중간검사 등의 제도개선이 조속히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