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4회 지역 기획보도부문_농산물 가격의 비밀, 도매시장의 수상한 거래_KBS광주 김효신 기자

‘농산물 가격의 비밀’ 뒤에는 도매시장의 불법이 있었다
 
-도매시장에서 석달을 살면 보이는 것들
 
‘도매시장’이라는 취재처를 앞에 두고 밤잠을 설치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눈뜨면 도매시장에 출근해 새벽 경매까지 지켜보고 해가 뜨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런 생활을 석 달을 하자 도매시장에서 벌어지는 불법과 꼼수들이 하나둘 씩 손에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쪽파 2톤을 화물차에 싣고 직접 도매시장에 출하해봤습니다. 경매는 하지 않고 중도매인들이 짬짜미로 물량을 넘기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경매 물량과 가격도 3분의 1로 축소해서 보고했습니다. 경매를 한 것처럼 꾸며서 물건을 빼돌리고, 지자체에 내야할 시장 이용료를 내지 않는 겁니다. 더 큰 문제는 농민들이 피해를 본다는 겁니다. 농민들은 당연히 경매를 거쳤을 것이라고 믿고 손해가 나더라도 도매법인이 주는 대로 농산물 값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지역 농산물을 유통하라고 세금으로 도매시장을 지어줬는데, 도매법인은 손쉽게 다른 시장에서 사다 팝니다. 농민들은 정작 자식처럼 키운 농산물을 팔 곳이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합니다.
 
직접 농산물을 출하도 해보고 도매시장에 몸담은 경매사와 중도매인, 하역반까지 거의 모든 층위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농산물 이송 차량을 따라서 광주전남에서 서울 가락시장까지 수십차례를 오갔습니다. 이렇게 해서 ‘농산물 가격의 비밀, 도매시장의 수상한 거래’ 시리즈 15회가 완성됐습니다. 첫 보도가 나가자 전국의 농민들에게 수 십통의 제보와 격려 메일이 쏟아졌습니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제보 메일은 많이 받아봤지만 이렇게 격려 메일을 많이 받은 적은 또 처음이었습니다. “귀 기울여 주는 곳이 없어서 그동안 말하지 못했는데, KBS가 보도해줘서 너무나 고맙다” “40년 동안 배추농사를 지었는데, 분통터져서 못살겠다. 전화 좀 달라”라는 메일까지.. 농민들의 한숨과 한이 녹아있는 문장들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농민들은 때가 되면 연례행사처럼 농산물을 갈아엎고 보조금 달라고 떼쓰는 집단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는 메일이었습니다. 농민들이 벙어리 냉가슴 앓듯 속으로만 삭였던 억울함과 고통이 저희 보도로 인해 조금이라도 해소됐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과제도 안았습니다. 저희가 체험에 가까운 취재로 그야말로 레알(?)하게 현장을 보여줬는데도, 관리책임을 져야할 지자체는 아무런 문제를 찾지 못했다며 덮기에 급급합니다. 기준법인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를 찾아봤습니다. 법에서 불법이라고 규정한 것이 시행규칙에 가서는 합법으로 변신합니다. 심지어 법과 시행령, 시행규칙이 꼬리물기 식으로 돌고 돌아 무엇이 불법인 지 알 수 없게 되기도 했습니다. 취재기자가 이럴진데, 농민들은 얼마나 답답하고 기가 막힐까요.
 
지난해 도매법인들이 거둬들인 수수료 수입만 6천 6백억 원이 넘습니다. 농산물 유통이라는 게 험하고 돈이 안 된다는 일반적인 인식 때문일까요? 도매시장이라는 곳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불법과 편법을 넘나들며 돈 있는 사람들만 돈 버는 곳으로 변모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탐사팀은 도매시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장기 취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바윗돌 하나를 깨는데 100번을 때려야 한다면, 저희는 100번 취재할 작정입니다. 그 때쯤 되면 농민들의 얼굴에서 눈물자국이 사라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