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4회 경제보도부문_- 누가 암환자들을 법정에 세웠나_MTN 유지승 기자

암환자들에게 표정은 없었습니다.
 
생사기로에 소송 거는 보험사들
 
눈물도 메마른 사람들. 법정에서 만난 암환자들의 첫 인상입니다. 암환자들은 모두 죽음을 문턱에 앞두고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고난을 마주했습니다. 작은 범칙금 하나 물어본 적 없다는 이들은 자신이 보험사기 혐의로 경찰서와 법원을 오간다는 사실 만으로도 충격에 빠져 있었습니다. 가족들에게 더 짐이 될까봐 홀로 끙끙 앓은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법원 등기 우편물이 현관에 붙어 있을까 불안해 반년 간 집밖을 나가지 못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법정에 선 암환자들은 치료를 중단한 채 소송에만 매달려 매일 불안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제가 취재를 갔을 때는 그 고통의 기간만 무려 3년이 넘은 시기였습니다. 치료 골든타임을 놓친 탓에 대부분 전이가 돼 말기암 선고를 받았고, 재판 도중 사망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취재를 위해 처음 법정에 간 날은 1명의 암환자 재판이 있었는데, 앞에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와 있었습니다. 이들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또 다른 암환자들이었습니다. 약해진 마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3년 넘게 이렇게 매일 서로의 법정을 쫓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이 법정에는 암환자들 뿐, 이들을 고발한 보험회사와 치료한 의사는 없었습니다. 3년 만에 무죄를 받은 암환자들도 있었지만, 정작 이들을 법정에 세운 보험사와 의사, 경찰, 검찰 중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현장에서 마주한 암환자들의 모습은 또랑또랑하게 억울함과 부당함을 설명했던 통화 목소리와는 또 달랐습니다. 몸무게가 40kg도 되지 않아 부러질 것 같이 약했고, 어머니뻘 되시는 분이 입술이 터진채 법정을 빠져나와 아이처럼 참았던 눈물을 서럽게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몸 상태가 악화돼 며칠 전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에서 깨어난 말기암 환자는 반 마비된 몸을 이끌고 인터뷰에 응해 “억울함을 풀어 두 아들에게 범죄자 엄마로 남지 않겠다”며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시한부 암환자들이 왜 거대한 보험사들과 싸워야 하는 것일까? 보험사가 주장하는 암환자들의 보험사기는 도대체 무엇일까. 왜 재판은 이토록 3년 넘게 끝나지 않는 것일까. 암이란 질병은 다른 상해 사고와 달리 속일 수 없는 병인데다, 의사 허락 없이는 입원치료를 받을 수 없습니다. 더욱이 보험사기라고 지목된 보험금은 보험사가 수시로 현장조사를 나와 보험약관에 따라 적법한 심사를 거쳐 지급된 것이었습니다. 여러 의문이 취재를 이끌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
 
암환자들이 건네 준 문서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보험사의 이름이 하나하나 적혀 있었습니다. 늘 TV에서 “아플 때 든든하게 지켜준다”며 “하루만 입원해도 보장”을 외치던 보험사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보험사들이 경찰에 제출한 진정서에는 “암환자들을 엄벌해 달라”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몸이 아프더라도 경제적으로 힘들 때 대비해 쥐고 있던 보험이 가장 아픈 순간에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암은 우리나라 사망 원인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우리 국민 10명 중 8명이 민간 보험에 가입돼 있습니다. 이번 사건은 혹시라도 암에 걸린다면, 또 민간보험에 가입돼 있다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이때 당신의 삶은 어떨까요?
 
처음에 암환자들은 재판 관련 서류를 다시 꺼내보는 것조차 끔찍하다며 인터뷰를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길 바란다”며 기꺼이 카메라 앞에 서주셨습니다. 그 용기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국회와 금융당국 관계자들은 보도와 관련해 “우려했던 문제가 터졌다“는 반응이었습니다. 또 보험사기방지특별법 통과 당시 우려했던 소송 남발로 인한 피해가 현실화 된 만큼,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국회에서는 “법의 피해자가 없도록 함께 방안을 찾고 싶다”고 먼저 연락이 왔습니다. 암환자들에 대한 재판은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우리가 관심을 갖는다면 더 이상 암환자들이 억울하고 외롭게 법정에 서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단 한명의 억울한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끝까지 감시하고 추적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