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3회 지역기획보도부문_일본군 위안부 2부작_대구MBC 심병철 기자

모두가 아는 것 같지만 제대로 모르는 일본군위안부
 
“ 모리카와 마치코입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고운 목소리에 취재진은 깜짝 놀랐다. 모리카와 씨의 목소리가 나이보다 훨씬 젊었기 때문이었다. 칠순을 넘긴 여성의 목소리로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맑고 깨끗했다. 그는 인권운동가로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인 故 문옥주 할머니의 증언을 철저히 고증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학계도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을 모리카와 씨처럼 완벽하게 고증한 사례는 없다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취재진이 모리카와 씨를 미얀마 현지 취재에 동행하려고 하는 이유도 바로 그 점에 있다. 일본인이 고증한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이야말로 객관적이고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1년 7개월에 걸친 ‘일본군 위안부 2부작’ 취재는 이렇게 해서 막이 올랐다.
 
일본군위안부의 진실을 찾기 위한 17개월의 여정
2019년 3월 하순 취재진은 미얀마의 제2의 도시인 만달레이와 마다야, 바간, 프롬, 양곤 등지에 남아 있는 일본군위안소를 찾아 역사의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이 지역들은 문옥주 할머니가 배치됐던 위안소가 있었던 곳이고 몇 몇 장소는 모리카와 씨가 현지 조사를 통해 직접 찾아냈다. 우리는 모리카와 씨를 상대로 한 취재도 병행했다. 일본인으로서 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에 뛰어들게 되었는지 그리고 위안부 운동은 자신과 일본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물었다. 그는 담담하게 이렇게 대답했다. “문옥주 할머니의 증언을 고증하고 기록하는 일은 부끄러운 일본인들의 행적을 후세에 남겨 잘못을 뒤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할머니를 알게 된 이후 방황하던 내 인생이 변했으며 비로소 진짜 모리카와가 되었다.”
취재진은 미얀마 현지 취재를 마치고 2019년 5월 말부터는 일본 취재에 들어갔다. 일본군 위안부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물론 사쿠라이 마코토 일본제일당 대표와 같은 극우 인사들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군위안부는 무엇이고 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취재했다. 특히 일본군위안부 존재를 세상에 처음으로 육성으로 알린 시로타 스즈코가 생전에 살았던 다테야마의 부녀시설도 직접 찾아 시로타의 행적을 확인했다. 우리는 가급적 많은 일본인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국내 취재는 한혜인 아시아평화와 역사연구소 연구위원과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제3의 길을 주장해 큰 논란을 일으켰던 박유하 교수, 안이정선 정신대시민모임 前 대표를 비롯한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취재진은 또 일본군위안소 관리인의 일기가 소장돼 있는 파주의 타임캡슐을 모리카와 씨와 함께 방문해 문옥주 할머니의 증언과 정확히 일치하는 부분을 확인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모리카와 씨는 한국을 방문하고 1달도 되지 않아 급성 백혈병으로 운명했다. 가장 성실했던 위안부 역사의 기록자 중 한 명이 우리 곁을 떠난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일본 우경화를 막는 가장 강력한 수단
 
취재진은 장시간의 취재 끝에 우리 사회가 일본군위안부에 대해 아직 제대로 모르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 문제가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른 지 30년 가까이 지났고 많은 사람들이 위안부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우리 사회는 이 문제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고 정작 위안부 증언에 대한 고증과 기록에는 무관심했다. 반면 모리카와 씨와 같은 일본의 양심세력들이 우리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왔다. 또한 그들은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책임을 부정하는 아베 정부를 비판하는 운동도 멈추지 않고 있다. 이들의 이런 노력이 없었다면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사과한 1993년 고노담화도 나올 수 없었다.
사실 위안부 문제의 가해자는 일본제국주의와 이들에게 협력한 한국의 친일세력이다. 피해자는 조선여성과 가난한 일본여성이다. 그런데도 한일 양국 국민들은 민족과 국가라는 프레임에 빠져 서로를 적대시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가해자 일본, 피해자 한국이라는 오래된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전환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위안부 문제의 해결은 일본사회의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양심세력과 손을 잡고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공동전선이 필요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