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2회_뉴미디어부문_“사람이 또 떨어진다”···추락사 1136명 추적보도 _MBC 남재현 기자

사람이 또 떨어진다···추락사 1136명 추적보고서
보도를 내기까지 꼬박 11개월이 걸렸습니다. 법원과 검찰, 고용노동부에 최근 3년치 자료를 받기 위해 1천2백건이 넘는 정보공개 청구를 했고 “원하는 정보를 내어 줄 수 없다”며 비공개 처분이 내려질 때마다 매번 큰 산을 넘는 마음으로 취재를 해야 했습니다. 국회의원실을 돌며 도움을 요청하기까지 했는데 법원 판결문 572건과 노동부 재해조사의견서 1천40건을 모으는데만 5개월이 걸렸습니다. 공사현장에서 매일 한두명씩 목숨을 잃고 있는 현실을 다시 한번 알리고 공사현장 안전이 조금이나마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작된 취재는 생각보다 훨씬 더 고된 작업이었습니다.
 
생명줄을 걸 고리만 하나 있었어도살릴 수 있었던 안타까운 죽음
판결문과 재해조사의견서에 적혀 있지 않는 팩트들을 확인하기 위해 전국에 있는 공사현장과 사건당시 공사 관계자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다 지난 일”이라며 “지금은 폐업을 했다”며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는데 추락사고가 난 공사현장의 공통점은 하나로 모아졌습니다. 위험한 순간 노동자를 지켜줄 추락방지그물은 고사하고 작업발판도 안전난간도 없었다는 겁니다. 생명줄을 걸 고리하나만 있었어도 살 수 있었을 목숨들이었는데 그 고리를 걸 곳이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재수가 없어서 죽었다고?”.낮으면 낮을수록 더 짙게 드리워졌던 추락사 그림자
죽음의 위험에 가장 가깝게 노출된 사람들의 나이와 국적, 채용형태도 분석해 봤습니다. 일용직과 하청업체 직원, 그리고 외국인이 희생자들의 대부분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낮은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이들이 주로 희생자이자 피해자였습니다. 이들이 희생자이자 피해자인 이유는 추락사를 막을 방법은 분명히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산업안전보건법과 건설산업기본법에도 추락사를 막을 방법이 명확히 적혀 있습니다. ‘공사기간이 늘어나고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이유를 들어 지키지 않을 뿐이었습니다. 추락사는 노동자들의 부주의 탓이 아니라 결국 돈 때문이었습니다.
 
죽음으로 내모는 4단계 하청..뒷돈으로 챙기는 안전비용
법에서는 공사비의 최대 3%까지 노동자 안전에 쓰라고 명시하고 있고 불법 재하청도 엄격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부실공사를 막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안전한 시공을 담보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지키지 않고 있었습니다. 안전용품을 산 것처럼 서류를 꾸미는 경우도 있었고 공사비를 아끼기 위해 처음부터 안전비용은 잡아 놓지도 않고 무면허 업자에게 공사를 넘긴 경우도 있었습니다. 결국 하루하루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말 한마디 못 한 채 생명줄 하나 걸 곳 없는 허공에 걸린 철골 위에서 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습니다.
 
불법이 들통났는데도 모르는 국토부..검찰·경찰은 수사조차 안했다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불법재하청이나 무면허시공이 밝혀진 사례 10여 건을 추려서 국토부에 찾아가 봤습니다. 판결문까지 나오고 추락사에 대한 책임까지 물었던 사건들이었는데 불법재하청이나 무면허시공 등에 대한 조사나 처벌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국토부는 고용노동부나 검찰, 경찰이 조사를 해도 잘 알려주지 않는다는 탓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사법기관들과 관련정보를 원활하게 공유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허점이 있었던 겁니다. 게다가 취재과정 중에 밝혀진 사실 가운데 현장소장이 불법재하청이 있었다고 시인까지 했는데도 검찰과 경찰이 수사를 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사람이 죽었는데 평균 벌금 469만원..1399명 가운데 실형은 단 4명 뿐
건설현장에서 노동자가 일을 하다 추락사를 하게 되면 주로 고용노동부의 산업안전보건법에 처벌을 받습니다. 주의의 의무를 다 했는지 안전장치는 충분했는지를 살펴보는 겁니다. 더 구조적인 문제인 불법재하도급이나 무면허시공은 조사나 수사단계에서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에 대한 처벌이 가벼운 것은 아닙니다. 법으로는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 선고할 수 있도록 돼 있는데 추락사로 재판에 넘겨진 1천399명 가운데 실형을 받은 건 4명, 평균 벌금은 5백만 원이 채 안됐습니다.
 
대법원도 인정한 기울어진 양형기준..“양형기준위에서 논의하고 고치겠다
판사들이 선고를 할 때 참고하는 양형 기준이 낮게 잡혀 있고 같은 범죄를 여러 번 저지르면 처벌이 무거워지는 동종누범 기준에도 벌금형은 빠져 있습니다. 결국 이미 전과 5범, 사망사고가 두 번이나 내고서야 사업주는 두 달 징역형을 살았는데 이마저도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습니다. 유족들과 합의를 보면 죄를 묻는 게 더 어렵다보니 현장에서는 사람이 죽어도 “재수가 없었다”고 치부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이렇게 기울어진 양형기준에 문제가 없는지 취재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물었습니다. 대법원은 “경청할만한 지적”이라는 답변을 보내왔고 심의를 위한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위험의 외주화는 아직 또 진행형..오늘도 사람이 또 떨어진다
“더 이상 꼬리 자르기로 재해현장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이 도입돼야 한다는 논의가 한창입니다. 건설현장 역시 지금은 평균 5백만 원도 안 되는 벌금으로 현장소장이나 하급관리자가 처벌을 하는 게 보통이지만 실질적으로 안전을 책임지도 비용을 집행해 줄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해야 산업재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취지입니다. 보도가 나간 뒤에 국토부가 불법하도급 수사 정보 공유를 위해 제도를 개선하고 대법원이 기울어진 양형기준에 검토가 필요하다 인정했듯이 지금과는 달라져야 오늘도 사람이 떨어지는 걸 막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