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1회 지역기획보도부문_농민 없는 농업법인_KBS광주 김효신 기자

“우리는 등외 국민이예요” 취재 과정에서 만난 농민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농민이 피해를 보고 이용을 당해도 공무원들이나 관계자들은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혼잣말같은 넋두리를 가늘고 길게 이어갔다. 광주 전남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해 농업분야를 6년이나 출입했는데… ‘나는 그동안 무슨 취재를 했던가’ 자괴감이 밀려왔다. 본사 탐사보도부 생활을 마치고 올 초 광주 탐사팀에 복귀하면서 다짐했다. ‘농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보도를 하겠다.’
농민단체와 농민들을 만나면서 접한 현실은 더 심각했다. 농업은 우리나라 기간산업이다. 전쟁같은 국가 위기 상황에서 외국에서 곡물을 조달하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농업은 적자가 나더라도 유지해야 하는 산업인 것이다. 때문에 농업에는 매년 6천억 원이 넘는 돈이 보조금으로 지급된다. 10년이면 6조 수준인데, 우리나라 농업이 더디게라도 발전하는 것이 맞지 않았을까? 그 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취재 과정에서 확인해보니, 우리나라 농업 보조금은 대부분 농민들에게 지급되도록 돼 있다. 농업법인도 농민 참여 비율이 10% 이상이어야 하고, 영농법인은 5명 이상의 농민이 모여야 한다. 이런 곳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보조금 사업이 집중된다. 먼저 광주전남 최대 규모의 농업법인을 취재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취재한 ‘한두레 농산’이라는 농업법인은 우리나라 중견 건설사가 주도해 세운 곳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건설사 회장이 세우고 막내아들이 운영하는 곳이다. 자본금만 90억 원으로 웬만한 중소기업보다 많다.
이 농업법인은 농민 26명이 출자해 만든 것으로 돼 있었다. 어렵게 해당 법인의 주주 명부를 구해서 전수 조사에 들어갔다. 주소 하나만 들고 농민 주주들을 찾아 헤맸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농업법인을 세운 건설사 대표를 제외하고 모두 가짜 주주였다. 심지어 일부 농민들은 명의가 도용됐다고 말했다. 이렇게 농민들의 명의를 도용해 30억여 원의 정부 보조금을 따낸뒤 농산물유통센터를 세운 것이었다.
심지어 이렇게 건립된 농업법인은 회장 일가의 배를 불리는 데 동원됐다. 가짜 회계장부를 만들어서 농업법인의 돈을 빼돌려 주식을 사들이고, 이 주식은 몇 년 뒤 회장 명의로 둔갑됐다. 심지어 농업법인의 지위를 이용해 주변 농지를 싸게 사들인 뒤 회장 자녀 3명에게 헐값에 넘기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들은 수억 원의 뒷돈을 챙기고 이들의 사업을 도왔다. 이런 사실들은 3달의 취재기간 동안 농업법인의 회계장부와 내부 자료를 방대하게 수집하고 30여 명의 관련자를 만나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또 입수한 자료는 회계사와 변호사로 꾸려진 자문단에서 교차검증해주면서 진실보도에 가깝게 취재할 수 있었다. 덕분에 지역에서 13회에 걸쳐 보도가 나가는 동안 농업법인과 건설사 대표로부터 어떤 항의나 반론도 들어오지 않았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건설사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내 자식들에게 땅을 물려주는데 비싸게 받을 필요가 있겠소? 세금도 많이 나오고…” 해당 건설사 대표는 ‘농업법인’에서 산 땅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여기고 있었다. 심지어 자녀들에게 토지를 편법 증여한 것이나 농민들의 명의를 도용한 것에 대해서도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언론이, 기자인 우리가 눈을 감았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다. 농민들이 더 이상 ‘등외 국민’으로 느끼지 않도록 앞으로도 농업문제를 외면하지 않을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