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0회 지역뉴스부문-태안 조직적 대규모 밀입국 의혹 단독연속보도_KBS대전 박장훈 기자

태안 밀입국 사건, 보름 동안의 밀착취재기
 
지난 5월 23일 충남 태안군 의항해수욕장에서 정체불명의 흰색 보트가 발견됐습니다. 보트 안에는 중국어가 적힌 빵 봉지와 물, 옷가지 등이 있었습니다. 중국인들의 밀입국으로 보이는 정황이었습니다. 불과 수백 미터 옆에 해안 경계초소가 있었는데도 보트는 사흘 동안 방치돼 있었고, 군과 해경은 어촌계장이 신고하기 전까지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몰랐습니다. 다음날 해경은 CCTV 분석 결과, 남성 6명이 보트에 접안하고 인근 도로를 걸어가는 모습을 확보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때 까지만 해도 1건의 단순 밀입국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태안에서 취재를 하면서 앞선 4월에도 정체불명의 또 다른 보트가 인근 해안가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는 얘기를 마을의 한 어민으로부터 전해 들었습니다. 순간 조직적인 밀입국의 의심이 들기에 충분했습니다. 더구나 처음 붙잡힌 용의자 1명의 진술에 따라 해경 초기 발표와 달리 밀입국 인원이 6명이 아니라 8명으로 바뀐 점, 2명이 다른 해안가에 내렸다가 목포행 승합차에는 합류한 점 등 이상한 점이 많아 해경 수사를 신뢰하기가 어려웠습니다. KBS는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한 달 전에 이미 다른 수상한 보트가 발견된 사실을 단독 보도하며 조직적인 밀입국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해경은 뉴스가 나가자 곧바로 본청 대변인까지 나서 취재진에게 연락하며 정정 보도를 요구하는 등 반박했습니다. 4월에 발견된 보트는 밀입국이 아니라 양식장 절도로 추정된다는 해명이었습니다. 현장을 직접 확인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태안 밀입국 의혹 특별취재팀은 꾸려졌습니다.
 
해경 발표와 다른 현장의 목소리.. 수상한 검은 보트 ‘PARSUN’에 담긴 비밀
 
취재 과정은 막막했습니다. 해경은 4월에 발견된 건 밀입국 보트가 아니라는 말만 할 뿐,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관련사건 전체를 함구했습니다. 특별취재팀은 태안 의항해수욕장 주변을 수소문해 4월 발견 보트의 최초 목격자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보트가 태안해경의 한 파출소 앞에 보관중인 걸 알고 찾아가서 보트를 직접 확인했고, 해경이 유실물로 판단해 해안가에 주인을 찾는다는 푯말까지 세워놓은 것도 확인했습니다. 또 발견 당시 해경이 이 보트 안에서도 중국어가 적힌 빵 봉지와 같은 제품의 중국산 연료통이 있었다고 한 말을 들었다는 목격자의 증언을 확보했습니다. 또 해경의 주장과 달리 보트 발견 당시인 4월은 인근 해삼 양식장에서 해삼이 나올 시기가 아니었고 바닷속도 흐려 잠수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얘기를 듣고 이를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눈에 가장 띈 건 보트에 달린 선외기가 이상했습니다. ‘PARSUN’이라는 상표를 단 이 40마력 선외기에는 ‘中国制造(중국제조)’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박혀있었습니다. 선외기 전문 업체부터 총판까지 여러 군데를 찾아다니며 확인한 결과, 해당 선외기는 국내에서 유통된 적이 없는 제품임을 확인했습니다. 보트에서 같이 나온 철제 연료통 역시 5월에 발견된 밀입국 보트에서 나온 것과 같은 제조사였습니다.
 
밀입국은 한 번이 아니었다
 
특별취재팀은 현장 취재를 바탕으로 다시 4월에 발견된 보트가 밀입국에 사용된 정황과 의혹을 상세히 보도했고, 해경은 그제야 그 보트를 단순 유류품에서 압수 물품으로 전환해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또 혹시 밀입국 관련 대응 훈련이 있었는지 확인하던 과정에 서산경찰서와 해경이 한 달여 전 인근의 서산 대산항에서 합동훈련을 한 사실이 적힌 문건을 찾아 정보공개청구를 해 어렵게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결국 군과 해경, 경찰이 대대적인 합동훈련을 하고도 서해 해상과 해안 경계가 뻥 뚫린 사실을 단독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며칠 뒤 6월 4일 3번째 수상한 보트가 인근에서 또 발견되자 중부지방해경청은 뒤늦게 태안 밀입국 사건 관련 브리핑을 열고 KBS가 제기한 ‘4월 검정 보트 밀입국 의혹’이 사실이었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동안의 해경 수사와 발표가 뒤집히는 순간이었습니다. 해경은 광범위한 밀입국 수사에 착수했고 이후 세 번째 보트 역시 밀입국에 이용됐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아직 밀입국 용의자에 대한 추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군도 13번이나 감시 장비에 포착해놓고도 구멍이 뚫린 사실이 드러나자 국무총리와 국방부장관이 직접 나서 군 경계 강화를 지시했습니다.
 
국가 안보와 직결된 해상·해안 경계…‘철통이 되길 바라며
 
밀입국 사건 발생과 군과 해경의 허술한 대응훈련, 추가 밀입국 의혹 제기, 사실로 드러난 추가 밀입국, 해경이 놓친 밀입국 정황까지 보도하는 데 보름여가 걸렸습니다. 하루 단위로 발제와 제작이 이어지는 지역 여건 속에서도 장기간 취재를 이어갔던 것은 국가 안보와 직결된 해상과 해안 경계에 구멍이 뚫렸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군과 해경이 처음 밀입국한 보트를 순찰과 감시 단계에서 발견했더라면, 발견된 보트에서 밀입국 정황을 발견하고 제대로 수사했다면 추가 밀입국은 막을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결국 세 차례 밀입국 사실이 드러난 뒤에야 해경은 책임자에게 징계를 내리고 군과 함께 뒤늦게 경계 강화 대책을 내놨습니다.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히면서 바닷길이 밀입국에 이용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입니다. 또 다른 밀입국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남북 관계도 나빠져 해상에서 도발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북한 소형 목선이 삼척항으로 들어온 지 채 1년이 지나지 않았습니다.
경계는 국가 안보의 기본입니다. 이번 취재가 구멍 난 해상과 해안 경계를 ‘철통’으로 거듭나게 하는 계기가 됐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