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0회 영상취재부문_人터view _광주를 향한 '의기' _YTN 이상엽 기자

20년 전 ‘의기’가 40년 전 의기를 만나다
 
‘의기’란 사전적 의미로 ‘어떤 일을 하겠다는 적극적인 마음’을 뜻합니다. 20년 전 대학 시절 중간고사도 포기하고 답사동아리 사람들과 광주를 찾은 적이 있습니다. 동기는 단순했습니다. 동아리 스터디 주제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었고, 마침 5.18 20주년 기념식이 다가오고 있었고, 형언할 순 없지만 가야 할 것 같은 막연한 의무감까지 더해져, 즉흥적으로 결정한 여행이었습니다. 젊었고, 지금보단 정의로웠으며, 앎을 향한 갈증도 컸던지라 열심히 돌아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 접하는 가슴 아픈 진실과 마주하며, 2000년 5.18은 날카로운 기억으로 뇌리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좋은 앵글은 아니었지만, 그 여정의 순간들을 카메라로 꼼꼼히 기록해 두었습니다. 취재기와는 상관없는 대학 시절 얘길 꺼낸 건, 이번 아이템이 당시 그림을 모티프로 활용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마음으로 광주를 찾았으며, 40년이 지나 무엇 때문에 그때를 되짚는지, 그리고 그러한 ‘의기’가 5.18이 남긴 역사적 의미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광주 시민의 입장이 아닌, 외면코자 했으면 외면할 수 있었던 외지인의 시선으로 5.18을 바라보고자 했습니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5.18
 
20년 만에 다시 꺼내 본 필름엔 광주의 다양한 모습이 담겨있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이미진 소복을 입은 어머니들이었습니다. 20년이 지났지만 독재의 폭거에 자식을 빼앗긴 애끊는 마음은 조금도 덜어지지 못한 듯했습니다. 지금은 작고하신 김의기 열사 어머니도 다르지 않으셨는데 그가 유독 기억에 오래 남은 건, 김의기 열사가 광주사람도 그곳에서 사망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철저한 외부인이었으나 광주의 참상을 알리다 서울에서 사망한 그는 여느 사람들처럼 외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이번 취재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었습니다. 당시 광주를 위해 노력한 외부인이 김의기 열사 말고도 많았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취재하며 만난 사람들은 이러한 외부인들의 ‘의기’가 모여 시대를 관통하고, 6월 항쟁과 촛불집회의 동력으로 이어져, 지금의 민주주의를 이루는 근간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올해가 김의기 열사 40주기임에도 그의 선한 영향력은 여전히 주변 사람들을 감싸고 있고, 그가 남긴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은 많은 이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지표가 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려 노력한다는 저마다의 다짐은, 그가 목숨 바쳐 광주의 참상을 알리려 한 이유와 맞닿아 있습니다.
 
저마다의 부채의식이 만들어낸 모두의 가치
 
김의기 열사의 노력과 희생, 그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는 주변 지인들의 마음, 그리고 20년 전 광주를 답사했던 우리 모두, 발로는 저마다의 부채의식이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은 사실, 누군가 우릴 대신해 짊어져야 했던 절망스러운 경험 덕분이라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라는 거죠. 인용이란 형식을 빌었지만, 관념적인 아이템이라 고민이 깊었습니다. 귀한 상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