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뉴스부문_가락동 농수산물 경매조작_SBS 한상우 기자

한 기자 그건 정말 아무 것도 아니야. 나중에 내가 더 큰 걸로 줄게, 응?”
옥수수 경매 비리를 취재하며 새벽 가락동 시장을 두번째로 찾은 날 경매회사의 한 직원이 한 말 이었다. 옥수수 경매 비리는 가락동에서 얘깃거리도 안 된다는 말이다.
옥수수 농사를 한해 동안 지어 여름 내내 가락동 시장에 올려보낸 농민이자 출하주 김 모씨. 16번 의 경매 과정에서 매번 예상보다 낮은 낙찰가를 받고 실망한 그의 사연이,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말뿐인 전자경매 시스템의 문제가 이 시장에서는 사소한 것이라는 말이다.
‘의외로 더 많은 얘기를 들을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때 마침, 다음날 보도국 편집회의에 서 옥수수 경매 비리 내용과 함께 가락동 시장 경매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를 함께 짚어야하니 보강취재를 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세번째로 가락시장을 찾았다. 이제 아는 얼굴도 여럿 보이고, 담배 한대 물려주며서 그만 오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을 날씨지만 차가운 새벽 공기가 목 뒤를 파고들고 농산물을 담은 포대를 나를 때마다 날리는 먼지에 목이 칼칼했다.
경매 비리의 한 축인 경매회사의 경매사가 목이 터져라 가격을 외치고 또 다른 축인 중도매인들은 조금이라도 더 좋은 물건을 싸게 사기 위해 이리 저리 농산물을 뜯어보고 있었다. 그 순간, 이 사람들, 각자의 삶을 위해 새벽에 뛰는 이 사람들을 ‘경매 비리’라는 살벌한 굴레로 엮어도 되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사실 이들의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조금은 자신 없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정말로 전자 경매 시 스템이라는 것 자체가 현실에 맞지 않는 건 아닐까. 애당초 투명한 경매 시스템이란 불가능하고, 이들 말대로 적당히 임의로 가격을 흥정하고 거래하는 것이 농민에게도 중도매인들에게도 모두 좋은 건 아닐까.’하는 문제다.
실제로 이들의 얘기는 이랬다. 경매를 하다보면 물건이 안 좋아 유찰되는 경우가 있고 여기서 재경매를 하면 가격이 시가의 절반이하로 뚝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경매를 하는 대신 적당히 가격을 타협해 물건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넘기고 경매 자료를 ‘대충’ 기록해 보고한다는 것 이었다. 그래야 물건을 출하한 농민도 터무니 없는 가격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럴듯 했다. 하지만 이들의 이런 얘기는 지금까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진 ‘허위 경매’의 일부 긍정적 효과의 하나일 뿐이었다. 아예 중도매인 몇몇이 품목 하나의 가격을 통째로 좌우하는 구조, 그리고 거기서 ‘당근 장학생’이니 ‘오이 장학생’이니 하는 말이 나올 정도로 눈먼 돈이 굴러다 는 상황. 이 모든 것이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계속된 경매 비리의 결과였다. 결국 옥수수 경매 비리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이번 얘기를 덮으면 더 큰 뉴스 거리를 주겠다는 경매사들과 중도매인들로 부터 후속보도의 근간이 되는 얘기들을 들었다.
구조적인 전자경매 시스템의 문제, 허위 중도매인 등록 등등. 그리고 앞으로 계속 취재해야할 공사와 법인, 중도매인의 또 다른 비리까지 말이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와 더불어 취재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이유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 모든 취재 과 정에서 기사가 “얘기가 된다.”는 판단을 하고 충분한 시간을 준 부장과 데스크, 캡 등 모든 선배들 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또 가장 큰 힘이 됐고 함께 수상하게된 우리 강남라인의 심우섭 선배, 임찬종 기자 그리고 수상 명단에서는 빠졌지만 취재한다고 라인을 비울 때마다 고생한 막내 김도균 기자에게 고맙고, 마지막으로 취재의 방향과 내용에 대해 꼼꼼한 조언을 해준 우리 ‘천사’ 바이스 이병희 선배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