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2회 뉴스부문_故 최숙현 사태 단독·연속 보도_YTN 조은지 기자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
 
극단적 선택 전 故 최숙현의 메시지였다. 한 맺힌 22살 유망주의 마지막 절규는 비극에 스산함을 더했다. 유족과 접촉해 최초로 입수한 폭행 녹음파일. <이빨 깨물어, 커튼 쳐, 짝! 짝! 너는 맞을 자격도 없어!> 활자로만 느껴진 낯선 죽음이 비로소 생생하게 살아났다. 광기 어린 운동처방사의 손찌검을 온몸으로 견디며 최숙현은 물기 어린 목소리로 그저 조아릴 뿐이었다. <제가 맞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꺽꺽, 죄송합니다.> 진땀이 났다. 목소리를 곱씹어 들으며 문자로 꾹꾹 바꿔 치는 내내 소름이 돋았다. 미간이 쪼그라들었다. 휴대전화까지 감시당했다는 최숙현이 얼마나 마음 졸이며 녹음 버튼을 눌렀을지….
세상에 남긴 마지막 SOS를 듣고, 또 들었다. 한 시간은 족히 되는 분량을 받아치며 충격적인 발언마다 별표(★)를 쳤다. 스크롤을 올려보니 죄다 까맸다. 이런 욕설을 방송에 써도 될까? 충격요법이 오히려 진실규명에는 도움이 되려나? 초 단위로 숨소리를 쪼갰다. 늘 마감 직전에 초치기로 편집이 끝났다.
 
어쩐지 한 푼의 책임감을 짊어지고, YTN은 닥치는 대로 두드렸다. 유족과 철인3종 선수·지도자들,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 철인3종 협회, 국회까지 경계는 없었다. 경주시청 철인3종 팀에 있었다는 가혹행위 정황을 고인의 훈련일지와 녹취록, 동료선수·관계자들의 증언, 국회의원실 자료 요청을 통해 파헤쳤다. 폭행을 전면 부인하는 가해자들의 입장과 수사기관 진술 내용도 이런 다양한 루트로 입수했다. 최숙현 선수의 신고를 받은 관계기관들이 왜 미온적으로 대처했는지, 오히려 비극에 영향을 끼친 게 아닌지도 깐깐히 살폈다. 우리나라 체육계에 만연한 성적 지상주의와 아마추어 행정까지 폭넓게 건드렸다. 파는 족족 잘못뿐이니, 그야말로 ‘노다지’였다. 7월 한 달에만 40여 건의 기사, 그 가운데 절반을 단독으로 채웠다. 오히려 황망했다.
 
철인3종 유망주의 극단적 선택 이후 벌써 두 달이다. 가해자들은 협회에서 영구제명돼 앞으로 종목에 발을 들일 수 없다. 줄줄이 구속·기소돼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문체부 아래 스포츠윤리센터가 철발을 뗐고, 체육회에서는 폭력 근절대책을 ‘또’ 내놨다. 국회에서는 ‘최숙현 법’으로 불린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 일사천리 통과됐다.
 
부끄럽지만 10년 가까이 스포츠 판에 있으면서도, 철인3종 종목을 취재한 적이 없다. 어쩌면 고인은 운동하면서 만난 기자가 몇 없을지도 모르겠다. 마음을 터놓을 기자가, 하다못해 전화번호라도 아는 기자는 있었을까. 도쿄올림픽 출전을 코앞에 둔 1등 ‘가해 선배’ 대신 본인 편을 들어줄 거라는 확신은 감히 못 했을 거다. 너무나 명백한 폭행 녹음파일을 쥐고 22살 유망주는 수차례 주저했을 것 같다. 슬프게도, 또 비극적이게도, 故 최숙현 선수는 ‘죽음으로서’ 그동안의 가혹행위를 스스로 증명했다. 그제야 언론은 호떡집이 됐다.
 
급한 불을 끄고 ‘멍 때리며’ 돌아보니 22살 청춘의 죽음에 새삼 마음이 아려온다. 할 수 있는 모든 곳에 SOS를 쳤지만 최숙현은 마지막까지 철저히 외로웠다. 철인3종을 그만둬도 행복한 세상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또래들과 하하호호 떡볶이를 먹고, 수학여행 전날에 설레서 잠 못 드는 밤을 경험했다면. 메달공장에서 운동기계로 살지 않았다면. 땀만 흘리다 떠난 짧은 젊음을 위로한다. 혹시 지금도 ‘맞는 게 운동선수의 삶이고, 그게 사회인 줄 아는’ 제2의 최숙현들이 있다면, 이번에는 손을 내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