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8회 기획보도부문_조동100년 연속보도_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 홍주환 기자

제대로 쓴 역사가 맞습니까
 
‘민족 정신의 수호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올해 100주년을 맞이 하며 말한 이야기입니다. 올해 1월 1일부터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지면에는 자축이 가득했습니다. 두 신문은 자신들의 역사를 정녕 왜곡없는 거울 앞에 두었던 것일까. 취재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등 외부기관과 협업해 두 신문의 과거 지면을 분석했습니다. 한자를 잘 몰랐던 저는 항상 스마트폰에 한자사전을 켜놓고 신문을 읽어 나갔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일왕을 찬양하고, 침략전쟁을 선동한 기사들이 여럿 발견했습니다. 조선일보는 같은 민족을 향해 전쟁에 나가 싸우라고 했고, 일제의 동맹국이었던 나치 독일을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동아일보는 중일 침략전쟁 당시, 조선인 최초 전사자였던 이인석을 두고 ‘전사는 남자의 당연사’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습니다. 스스로 민족지임을 내세우는 신문에서 쓴 기사라고는 믿기지 않았습니다.
 
취재진은 故 이인석의 딸을 만났습니다. 이제는 80대 노인이 된 딸은 여전히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만 살아 계셨다면…’ 이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하기도 했습니다. 그에게 조선과 동아일보가 쓴 이인석 관련 기사를 보여줬습니다. 딸은 한숨만 내쉬었습니다. 그 한숨 소리가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두 신문의 폐간에 대해서도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최근에 작성된 한 논문을 보다가 두 신문의 폐간 과정을 기록한 일제 문서가 국내에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습니다. 바로 조선총독부 비밀문서를 확인했습니다. 문서에는 조선과 동아일보의 폐간 과정이 비교적 자세히 적혀 있었습니다. 조선일보는 ‘일제가 민족지인 조선일보를 눈엣가시처럼 생각해 강제 폐간했다’고 주장하지만, 일제 문서에서는 조선일보가 저항했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조선일보의 사주는 폐간에 순순히 동의하며 ‘다만 동아일보와 같은 날 폐간시켜달라’고만 했을 뿐이었습니다.
 
동아일보 해직기자들이 1979년 유신법정에서 한 최후진술의 녹음파일을 입수했습니다. 동시에 1988년 5공 언론 청문회 당시, 조선•동아 사주들에 대한 증인신문 파일도 확인했습니다. 서슬 퍼런 유신법정에서도 기자들은 언론자유를 주장했습니다. 안종필 동아일보 해직기자는 “자유언론을 압살하는 모든 법과 제도는 철폐돼야 한다고 구속되었을 당시나 지금 법정에 서 있을 때나 마찬가지로 제 소신에는 변함이 없습니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조선과 동아, 두 사주는 청문회장에서 일제와 독재에 부역한 적이 없다며 강변했습니다. 독재 정권의 특혜는 ‘정부의 일반적인 선임’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젊은 기자들의 당당함과 사주들의 발뺌, 두 신문의 역사를 관통하는 이 장면을 가감 없이 리포트에 담았습니다.
 
조선일보 창간일인 3월 5일 시작해 동아일보 창간일인 4월 1일까지 총 13편을 보도했습니다. 그 사이 두 신문은 창간특집호를 냈습니다. 창간 특집기사를 모두 읽어 봤습니다. 이인석 후손의 눈물과 해직기자들의 분노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편의와 배제로 얼룩진 기록이 정당한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뉴스타파는 조선•동아의 100년 역사를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계속 기록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