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6회 뉴스부문_살릴 수 있었던 죽음, 권역외상센터의 좌절_MBC 남상호 기자

살 수 있었던 죽음, 권역외상센터의 좌절
 
지난해 말 저희는 한 연구결과 발표회를 취재하러 갔었습니다. ‘예방가능외상사망률’ 분석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였습니다. 외상 사망자 중에,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았으면 살아남았을 사람들의 비율입니다. 2015년 기준으로는 예방가능사망률이 30%가 넘었는데, 2017년 기준으로는 19.9%로 떨어졌습니다. 10%포인트 이상 억울한 죽음이 많이 줄어든 셈입니다.
 
처음에는 개선된 숫자로 보였습니다. 통계는 권역외상센터가 속속 문을 여는 등 우리나라 외상치료체계가 많이 발전하고 있는 것을 입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발표하는 교수님들의 목소리는 단순히 숫자를 발표하는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사망 사례를 하나하나 분석할 때마다, 이 환자는 살릴 수 있었을 거라는 안타까움이 가슴 속에 켜켜이 쌓였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여전히 10명 중 2명은 살 수 있었던 죽음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외상환자를 살릴 최후의 보루인 권역외상센터 문제를 취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 외상센터의 상징과도 같은 이국종 교수도 어렵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병원 내부의 욕설과 비아냥거림도 충격이었지만 저희에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바로 ‘바이패스’였습니다. ‘우회’라는 뜻대로 ‘외상센터에 병상이 없으니 환자를 외상센터가 아닌 다른 병원으로 보내야 한다’고 중앙응급의료센터와 소방청 등에 통보하는 조치를 뜻합니다.
 
데이터 수집에 나섰습니다. 중앙응급의료센터 종합상황판 데이터,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 자료를 토대로 2019년도의 ‘바이패스’ 시간대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환자들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분석해 나갔습니다. 산업재해조사의견서, 119 구급활동일지, 각종 사건사고 기사들을 취합해 ‘바이패스’ 시간대에 발생한 사고들을 추려냈습니다.
 
경기도 화성시의 한 공장에서 산업재해 사고를 당한 노동자는 외상센터에 병상이 없어 다른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죽전역 인근에서 사고를 당한 한 남성도 외상센터로 가려다 가지 못하고 다른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한 파출소 인근에서 총상을 입은 경찰관을 외상센터로 이송하기 위해 구급대가 헬기를 띄워보려 했지만 헬기는 뜨지 못했습니다. 모두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가 ‘바이패스’ 상태, 즉 병상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이 세 사람은 결국 모두 사망했습니다. 지난해 최소한 1백 명 이상의 외상 환자들이 아주대병원 외상센터의 ‘바이패스’ 때문에 외상센터가 아닌 다른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배경에는 ‘외상센터에 병상을 추가 배정하지 말라’는 병원 수뇌부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병원 원무팀에는 병원장의 이런 지시사항이 메모로 붙어있었습니다. 원무팀 직원들은 병상이 남아있는 걸 인정하면서도 병원장과 진료부원장의 지시 때문에 본관 병상 배정은 어렵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병원의 입장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닙니다. 한정된 병상, 비현실적인 수가, 의료진을 갈아 넣어 버티는 병원들,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작정 외상센터에 계속 자원을 쏟아 부을 수 없다는 현실론이 나옵니다.
 
정의와 현실의 이분법. 저는 이런 분위기가 매년 억울하게 죽는 최소 1천 6백 명의 외상 사망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반영한다고 생각합니다. 외상으로 죽는 사람은 위험에 노출된 현장 노동자나 어린이, 노약자 같은 사회적 약자들입니다. 죽음이 이 현실을 묵인하는 거래의 대가라면 그냥 이대로 가면 됩니다. 죽음이 거래의 대상이 아니라면 다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