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5회 뉴스부문_하고 싶어도 못하는 조혈모세포 기증_MBC 한수연 기자

“조혈모 세포 기증하러 갔는데 내년에 오라 합니다.”
지난해 12월 16일 한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자의 제보를 받았습니다. 장기 이식은 기증자가 없는 게 문제일 텐데, 기증을 하겠다는 사람을 못 하게 한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혈액암 투병 중인 한 아이의 사연을 듣고 수백 명이 용기를 내 조혈모세포 기증에 나섰는데, 등록 기관인 헌혈의집 등에서 ‘올해 예산이 마감됐다’는 이유로 돌려보냈다는 겁니다. 사실이라면 당장 한 명의 환우를 살리겠다는 기증 희망자들의 노력이 정부의 편의주의적 행정에 가로막힌 황당한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표치 1만7천 명 ‘마감’
관할 부처인 보건복지부에 사실 확인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매년 예산에 맞춰 조혈모세포 기증 등록자의 목표를 정해놓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예컨대 2019년 목표치는 1만7천명이었고 그 목표치가 이미 달성돼 더 이상 기증 등록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대표적인 탁상행정의 사례였습니다. 생명과 직결된 문제를 행정 편의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정부의 행태에 우선순위가 잘못 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환우 단체를 통해 환우의 부모님을 수소문해 직접 여쭤보기로 했습니다.
 
‘2만분의 1’ 확률
조혈모세포 기증은 환자와 공여자의 유전자형이 일치해야 할 수 있습니다. 혈연관계가 아닌 타인 사이에 유전자형이 일치할 확률은 약 2만 분의 1입니다. 악성림프종 4기 투병중인 성빈군의 부모님은 현재 정부에 공여자로 등록되어 있는 이들과는 성빈이의 유전자형이 맞지 않자, 그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이고자 직접 사연을 알리며 환우단체 등을 통해 조혈모세포 기증자를 모아 나섰던 겁니다. 한 달의 항암치료가 끝나면 바로 이식 준비에 들어가야 하는 성빈이 입장에선 한시가 급한데도, 꽉 막힌 정책 때문에 더 이상의 희망을 기대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복지부동’ 복지부
이런 상황을 알면서도 조혈모세포 기증 등록기관 5곳과 보건복지부 보건복지부의 태도는 안이했습니다. 등록기관들은 “정부에서 받은 예산이 이미 7월에 마감됐다”며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었습니다. 복지부 역시 관행적으로 매년 5개 기관에 목표치를 정해 예산과 함께 내려 보낸다며, 예산을 확대해 편성해주지 않는 국회와 기획재정부 탓만 했습니다. 실무자들에게 수차례 연락을 해 변동 상황을 체크했습니다. 그제서야 “내년 예산을 조기 집행하는 방안을 검토해보겠다”는 입장이 나왔습니다.
 
“크리스마스 기적 같아”
시민들이 문의하고 항의할 땐 꿈쩍 않던 복지부가 MBC 보도 이후 입장을 180도 바꿨습니다. 바로 다음날 조혈모세포 기증 등록기관들과 회의를 열고, 해결책을 검토했습니다. 이후 기재부에 요청해 올해 예산을 2억원 증액 편성했습니다. 이에 따라 지난 12월 24일부터 전국에서 1450명 가량의 기증 희망자가 추가로 등록 및 검사를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성빈이 부모님은 “크리스마스 기적 같다”고 하셨습니다. 취재진은 관련 내용과, 기증 희망자들의 기증 거부 등 조혈모 세포 기증 관련 문제점 등을 후속 보도했습니다.
 
성빈이가 뿌린 ‘희망의 씨앗’
지난달 23일 성빈군을 다시 만난 곳은 한 대학병원 장례식장이었습니다. 일치 확률이 높은 공여자가 생겨 이식을 기다리던 성빈군은 갑자기 상태가 악화돼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건강하던 때의 성빈 군 영정 사진을 보며 ‘조금 더 일찍 알아서 더 빨리 보도했더라면…’하는 생각에 가슴이 사무쳤습니다. 성빈군 부모님이 하셨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우리 성빈이가 아니더라도 다른 환우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잖아요.”
성빈이가 뿌린 희망의 씨앗이 조혈모세포 이식이 긴요한 어떤 환우에겐 새 생명으로 찾아줄 겁니다. 저희 또한 성빈군을 잊지 않고 정부가 바뀐 지침을 제대로 이행하는지, 그 과정에서 문제는 없는지 꾸준히 지켜보겠다는 책임감이 막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