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4회 기획보도부문_미쉐린 별과 돈 그리고 브로커_KBS 홍찬의 기자

맹신과 믿음
우리에겐 잘 모르거나 나와 다른 것은 덮어놓고 배척하거나, 좋아 보이는 남의 것은 무조건 신봉하는 의식이 있다. 한 번 그 편견과 선입견의 프레임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발간 4년째를 맞은 ‘미쉐린 가이드 서울’도 나에겐 그런 것처럼 보였다. 전 세계의 미식을 평가한다고 정평이 나 있는 미쉐린 가이드이지만 정작 120년 동안 베일에 가려진 평가 시스템은 정작 한 번도 제대로 된 검증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미식의 나라, 프랑스의 미쉐린 가이드에게 사람들은 미디어가 만들어 놓은 환상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셰프들이 오히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미쉐린 가이드 스타는 ‘미식계의 노벨상’으로 불린다. 미쉐린 별을 딴다면 셰프에겐 더 없는 영광이지만 반대로 못 따거나 별을 잃으면 실력 없는 요리사가 된다. 셰프들은 별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음식을 크게 가려 먹지 않고 미식에 별 관심이 없는 나는 그런 환상이 원래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이 아이템에 더 끌렸다. 미디어가 그동안 만들어 놓은 맹목적인 권위에 대한 의문을 던질 수 있는 보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거대한 권위처럼 보여도 지레 굴복하거나 주눅들 필요는 없다. 미쉐린 가이드도 이윤을 추구하는 일개 민간 회사에 불과하고 하나의 맛 평가 기준을 제공해 줄 뿐이다. 우리 각자 스스로가 의심해보고 실제로 검증하기 전까지는 맹목적으로 무언가를 믿는 것은 어리석을 수 있다는 작은 틈새를 ‘미쉐린 가이드’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맹목적인 믿음만큼 큰 해악도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어려움 속엔 길이 있다
미쉐린 가이드 취재는 전혀 생소한 분야인 데다 관련자들이 대부분 해외에 거주하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시작부터 부담이 꽤 컸다. 자료조사부터 인터뷰, 확인 작업까지 거의 대부분의 취재가 외국어로 진행돼야 하는 것도 또 다른 난관이고 도전이었다. 그만큼 그동안의 국내 취재 경험을 통해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것을 스스로 의심해보고 곱씹어봐야 했다. 그래야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생기는 오류와 오해를 최대한 줄일 수 있고 정확한 보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취재 논리와 팩트에 의문이 생기면 끊임없이 나 자신과 관련자들에게 질문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그냥 지나쳤을지 모를 가치있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곤 했다. 힘든 만큼 생각대로 취재가 됐을 때는 희열도 더 컸다. 이런 과정이 조금씩 쌓여가면서 불확실에 대한 두려움 대신, 고발 기사를 취재할 때 가장 중요한 ‘자기 확신과 믿음’이 생겨났다.
 
믿음과 신뢰가 전부다
결과보다 여러 사람들의 믿음과 신뢰로 만들어진 과정이 더 가치 있다. 1년 전 아직 실체가 없었던 아이템의 가치를 한 눈에 알아봐줬던 이수연 부장과 정신없이 바쁜 부서 상황에서도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구영희 부장은 끝까지 취재를 성원해주고 믿어줬다. 보도본부 수뇌부와 시사기획 창 팀도 상당히 큰 비용이 드는 해외 취재를 전폭적으로 믿고 지원해줬다. 영상취재부는 빡빡한 인력 운용의 어려움 속에서도 뛰어난 촬영기자 2명을 보름 동안의 해외 출장에 동행하도록 해줬고, 영상편집부는 9시뉴스 연속 보도를 위해 유능한 편집요원을 2주 동안 전담 배치해줬다. 최종적으로 1시간짜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시사기획 창’ 팀은 최대한 편안하고 자율적으로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줬다. 리서처와 AD, 편집자도 짧은 시간 동안 제작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큰 도움을 줬다. 역할은 모두 다르지만 이 가운데 한 사람만 없어도 이 취재 보도는 끝까지 마무리되지 못했을 것이다. 밀알 같은 작은 최종 결과물이지만 많은 이들의 믿음과 신뢰가 있어서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