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1회 기획보도부문_밀정 2부작_KBS 이재석 기자

전형성 벗고 희소성 찾다
 
지난해 여름이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취재원과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다 ‘느낌적 느낌’이 왔다. ‘밀정’이라는 키워드가 그때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KBS는 ‘공영방송’이라는 책무 또는 굴레 때문에 2019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다른 언론사도 물론 마찬가지겠지만 중압감의 크기가 좀 다를 수밖에 없다. 전사적 차원에서 이른바 ‘3.1운동·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단’이라는 조직이 지난해부터 꾸려지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탐사보도부가 100주년을 기리는 방식은 좀 달라야 했다. 굳이 부연하지 않아도 우리는 알고 있다. ‘역사 다큐멘터리의 전형성’이라는 게 뭔지 말이다. 거기에서 탈피하지 않으면 굳이 탐사보도부가 나설 필요가 없었다. ‘밀정’이라는 주제는, 언론은 말할 것도 없고 학계에서조차 일종의 ‘공백 지대’다. 논문도 거의 없다시피 하고 종합적 연구가 사실상 전무했다. 발제 단계에선 취재 성과가 얼마나 있을지 장담할 순 없었지만 어찌됐건 소재 자체가 전형성을 벗어날 만한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895명의 이름…‘독립유공자가 된 밀정’
올해 벽두부터 취재를 본격 시작했으니까 8개월이 걸렸다. 예산과 인력이 많이 들어갔다는 것도 당연한 얘기다. 물론 8개월 동안 ‘밀정’ 하나만 취재한 건 아니지만, 여하튼 탐사기획보도의 스케일이 확보되려면 역시나 장기간의 취재를 보장해주는 환경이 중요하다는 걸 재확인할 수 있었다. KBS는 이런 걸 집중적으로 잘 해야 한다. 그게 차별화할 수 있는 지점이다.
일본과 중국에서 5만 장의 자료를 입수해 분석했다. 한국인 밀정 혐의자 895명을 특정해 전체 공개했고, 이 가운데 특히 건국훈장을 받고 독립유공자로 둔갑한 사람들을 서사 중심에 놓고 집중 취재했다. 취재 후기니까 덧붙이자면 1부 마지막에 895명의 이름이 나열되는 부분은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결말 부분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다큐의 희소성은 영상과 스타일에서
내용도 내용이지만, 사실 다큐멘터리의 전형성 탈피는 영상과 CG, 음악에서 더 좌우된다고도 말할 수 있다. 취재 시작부터 방송 직전까지 모든 구성원들이 ‘스타일 설정’을 두고 토론을 이어갔다. 다큐멘터리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CG 감독을 일부러 섭외했고, 주로 예능 프로그램을 맡아온 음악감독을 호명했다. 전략적 선택이었다. 현장 카메라는 늘 2대 이상이었고 편집은 가급적 속도감을 높였다. 시청자들의 댓글 가운데서 다큐의 완성도를 언급한 것들에 특히 더 눈이 갔던 것도 그래서다.
‘현재적 의미의 밀정’을 고민하는 시청자들도 많았다. 시청자들은 제작진의 의도와 상관없이 보도물을 풍성하게 확장해 소비한다. 서훈 작업의 부실함을 지적하는 국정감사 자리에 취재진이 참고인으로 출석한다. 정부의 후속 조치가 있을 것이다. 민망한 자화자찬인데, 밀정 탐구가 독립운동의 이면사를 쓰는 일이고 그 첫발을 이제 뗐다는 전문가들의 평가가 있었다. 100주년을 기리는 데 KBS 탐사보도부가 작게나마 기여한 것 같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