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0회 지역기획보도부문_특집 다큐멘터리-숨_MBC강원영동 김인성 기자

<‘숨’에 담고 싶었던 건 70년 세월을 간직한 말의 무게>
 
 반공이 영동지역의 입을 닫게 하다
제주 4.3, 충북 노근리, 경남 거창, 강원 원주와 횡성… 광복 이후 6·25 전쟁기를 거치며 엄청난 민간인이 학살된 곳입니다. 몇 곳이나 되는지 셀 수조차 없습니다. 하지만 영동지역에선 이런 사건이 없는 것처럼 돼 있습니다. 어떤 증거도, 증언도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과연 전국 어디에서나, 국군, 인민군, 미군, 좌익, 우익이 돌아가며 저지른 학살 사건이 영동지역에서만 없었을까요? 거기에서 이번 취재가 시작됐습니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참여정부 때 활동했던 정부 공식기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도 영동지역에서 나온 증언은 10건 안팎에 불과했습니다. 광복 이후 이승만 정부는 반공을 국시로 내세웠고, 영동지역의 고성과 속초, 양양 일부 지역은 이른바 수복지역으로 6·25 전쟁 전까지 북한 땅, 그러니까 적의 지역이었습니다. 어렵게 광복을 맞았는데 북한과 소련의 지배를 받았던 곳, 갑자기 전쟁이 나고 간신히 살아남았더니 이젠 남한의 지배를 받게 된 곳. 영동지역 주민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가족과 이웃들이 빨갱이로, 간첩으로 몰려 죽거나 다치고, 연좌제로 몰려 취직을 못하는 상황이 수십 년 이어졌고 입을 닫아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이 마치 종교나 사상처럼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굳어져갔습니다.
 
 70년 세월을 간직한 말의 무게
혼나고, 내쫓기고, 문전박대를 당하면서 한 분 한 분씩 찾아뵙고 설득하고 또 찾아뵙고를 반복합니다. 처음에 절대 열리지 않을 것 같던 입이 드디어 열리고 오랜 세월 하지 못했던 말을 토해냅니다. 숨이 거칠어집니다. 눈물이 흐릅니다. 말을 해주겠다, 못 하겠다, 다시 해주겠다를 반복합니다. 크고 좋은 카메라와 영상촬영 스태프가 있었다면 이 말들을 듣고 담을 수 있었을까? 하나같이 무거운 말들이 저의 휴대전화에 기록되기 시작했고 어느 새 저장장치에는 천 개 가까운 파일이 쌓여갔습니다. 한 마디 한 마디의 말이 저마다 70년 세월의 무게를 지니고 있습니다. 말을 하고 나니, 한바탕 울고 나니 후련하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들의 말이 제 가슴에 그 무게 그대로 쌓였습니다. 그 말들 하나하나가 제각기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제작 과정에 바짝 신경을 썼습니다. 여러 차례 제작회의를 거치며 그래픽이나 내레이션 등을 모두 없애고 인터뷰만으로 기-승-전-결을 이었습니다. 그렇게 다큐멘터리 ‘숨’은 취재 시작 6개월 만에 탄생했습니다.
 
에필로그
방송 이후 한 달이 지났습니다. ‘숨’은 강원 영동지역과 영서의 춘천권역에서 한 차례씩 방송됐습니다. 강원 영동지역에서조차 아직 ‘숨’을 본 분들보다 못 본 분들이 훨씬 많으실 텐데 조금 더 많은 분들이 보실 수 있도록 전달하는 측면에서 지금의 지상파와 지역방송의 현실이 아쉽습니다. ‘숨’을 통해 휴대전화 촬영뿐 아니라 드론 촬영까지 익숙해져버린 저는 최근 출시된 카메라 성능이 좋은 새 휴대전화로 바꾸기로 마음먹고 또 다른 프로젝트를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강원 영동지역의 모든 민간인 학살 피해자와 가족들의 억울함이 조금이라도 풀릴 수 있도록 더 열심히 듣고, 기록하고, 취재하며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