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0회 기획보도부문_집중해부 1급 관사 연속보도_MBC 백승우 기자

1급 관사를 해부하다
 
1급 관사, 이런 게 적폐가 아닐까 싶습니다. 한 동네 사는 일꾼을 뽑아서 우리 동네 행정을 맡기는 게 지방 자치의 취지라면 관사는 진작 없어졌어야 했습니다. 이미 우리 동네에 살고 있는 사람인데, 굳이 예산을 들여서 관사를 제공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2019년 오늘, 관사는 있습니다. 관치 시대에서 민선 자치 시대로 세상은 바뀌었지만,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은 그대로 굳어버린 겁니다.
 
전국을 누비다
 
전국 광역, 기초자치단체장 243명의 1급 관사 현황을 전부 확인했습니다. 집은 물론 살림살이, 관리비까지 1급 관사에 얼마나 많은 예산이 지원되고 있는지 세세한 내역을 하나하나 살폈습니다.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1급 관사를 쓰고 있는 지자체를 추려내고, 다시 정보공개청구를 하는 작업을 2~3차례 반복했습니다. 1급 관사 제도와 규정의 연원도 추적했습니다. 국가기록원 자료와 243개 지방자치단체 조례도 샅샅이 훑었습니다.
자료를 모을 때부터 애를 먹었습니다. 정보공개청구가 ‘청구’가 곧 ‘공개’로 이어지는 제도가 아니라는 건 정보공개포털(www.open.go.kr)에 한 번이라도 접속해 본 기자들은 잘 알 겁니다. 243개 지방자치단체 관사 담당자들과 전화통을 붙들고 실랑이가 이어졌습니다.
난관은 또 있었습니다. 서울은 물론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등 전국 곳곳에 1급 관사가 있다보니 관사를 사용 중인 단체장들을 직접 만나 당사자들과 인터뷰하는 데만 한 달 넘게 걸렸습니다. 지도를 펼쳐들고 최단 거리를 짜느라 머리를 싸맸습니다. 대부분 인터뷰 요청을 거부했지만, 집무실이나 행사장, 관사를 찾아가 무작정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1급 관사는 다른 관사와 달리 사용 여부가 단체장 뜻에 달려있습니다. 단체장에게 직접 들어야했습니다.
 
요지경 관사
 
요지경 같은 관사의 민낯이 드러났습니다. 단체장 25명이 1급 관사를 쓰고 있었습니다. 관사 관리비나 운영비는 사용자 부담이 원칙이지만 1급 관사만 예외로 둬 대부분 예산에서 지출하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값비싼 가구나 가전제품 등 이른바 취향저격 살림살이를 마구 구매하는 경우도 수두룩했습니다. 관리도, 규정도 엉망이었습니다. 본인 집은 세를 놓고 임대수익을 올리는 ‘관사 재테크’도 드러났습니다. 지방의회의 감시와 견제도 허술했습니다.
이런 1급 관사의 제도와 규정은 박정희 정권 때 뿌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시도지사를 대통령이 임명해서 부리던 관치 시대가 끝나고 지방자치시대가 30년 가까이 됐지만, 권위주의 정권이 만든 관사에, 규정도 낡은 것 그대로, 민선 시도지사가 살고 있는 괴상한 동거가 지금도 진행 중인 겁니다.
 
취재 이후 단체장 25명 가운데 10명이 보도 내용에 공감하며 관사에서 나가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또 관사를 계속 쓰겠다는 단체장 15명 가운데 6명은 각종 공공요금 등 관리비는 본인이 내겠다고 전해왔습니다. 적폐를 말끔히 걷어내진 못했지만,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끝으로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진 못했지만, 이번 취재를 함께 한 지영록 영상기자와 탐사기획팀의 김유나, 김규희 리서처, 최유림 AD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