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8회 뉴스부문_하루 밤새 사라진 수술실 CCTV 법안_MBC 남재현 기자

‘하루 밤새 사라진 수술실 CCTV 의무화 법안’
 
의안번호 2020437…하루 밤새 갑자기 사라진 법안
보도국에서 퇴근할 무렵. 한통의 전화가 걸려 옵니다. 전날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이 발의됐는데 하루 만에 폐기가 됐다는 제보였습니다. 법안 발의 당시 환자단체의 환영메시지를 담아 이미 단신처리까지 한 내용이었습니다. 다른 매체들도 앞다퉈 기사를 내보냈는데 하룻밤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몇 번을 되물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지난 5월 14일 오후,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한 법안이 올라옵니다. 의료사고 발생 위험이 큰 수술을 할 경우에 환자나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 촬영하고, 환자 요청이 있으면 의사가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법안이 불과 하루 밤새 온데 간 데 없이 사라진 겁니다. 이유를 알아봐야 했습니다.
 
국회의원 10명의 동의로 발의…갑자기 마음 바꾼 의원 5명
통상 국회에서 법안이 발의되면 문구 수정이나 공동발의 의원수를 늘리기 위해 접수를 미루는 경우는 있어도 공동발의자가 법안을 철회하는 건 흔치 않은 일입니다. 의원들의 자존심이 걸린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동발의한 의원들을 찾아가 직접 이유를 물어봐야 한다는 게 데스크와 현장기자들의 판단이었습니다.
 
민주당 김진표*송기헌, 바른미래당 이동섭*주승용, 민주평화당 이용주 의원
아침부터 숨바꼭질이 시작됐습니다. 법안 철회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진 5명의 의원을 찾아 국회 의원회관을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지역구에 내려갔다”, “행선지를 알려줄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다행히 하루 종일 발품을 판 끝에 결국 만났고, 전화통화를 했습니다. 일부 의원들은 보좌관 핑계를 댔고, 또 나머지는 의사들에게서 집중적으로 항의를 받은 사실을 털어놨습니다. 대한의사협회 역시“조직적인 반대는 없었다”면서도 의사들의 항의가 있었던 것을 인정했습니다.
‘이건 입법 테러다’황망했던 환자단체와 유가족
“국회가 국민 목소리 보다 직능단체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고 있다” 보도가 나간 뒤 환자단체와 유가족들은 ‘입법테러’라는 말까지 썼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는 자조 섞인 말도 나왔습니다. 매우 당황스럽지만 그만큼 익숙했던 겁니다. 4년 전에도 비슷한 법안이 발의된 적이 있었는데 논의 한번 못한 채 자동폐기 된 기억을 갖고 있었습니다. 경기도가 1천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91%가 찬성을 했다던 그 수술실 CCTV 설치는 그렇게 또 무산되는 듯 보였습니다.
 
인터뷰 요청에 손사래 치는 의원들…“엮이기 싫다”
4년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찾아봐야 했습니다. 과거 보건복지위에 속해 있던 의원들을 수소문해 10명 중 5명의 의원이 하루도 안 돼 법안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뭐였을지 듣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인터뷰를 거절했습니다. 이유는 다양했지만 쉽게 납득이 가지는 않았습니다. 결국 가까운 보좌진들에게 경험담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문자*전화 폭탄은 기본이고 어떻게든 보복에 가까운 피해를 보게 된다는 겁니다. 표에 민감한 정치인들 입장에선 의료법 개정이 가장 껄끄러운 입법중 하나라고도 했습니다. 과거 민주당 원혜영 의원은 의사 성범죄 처벌 강화 법안을 냈다가 창업주로 있던 풀무원이라는 회사가 불매운동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어렵게 만난 원 의원 역시 좌절을 맛봤다고 했습니다.
 
“이 따위 법을…”막말과 욕설도…현 의협회장 과거 발언도 공개
3년 전에도 자유한국당 강석진 의원이 의사들의 성범죄가 잇따르자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을 냅니다. 하지만 당시 전국의사총연합 비대위원장이던 현재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에게 유튜브 채널에서 집중 포화를 맞습니다. 국회의원을 마치 어린아이 혼내듯 꾸지람하고 혼꾸멍을 냅니다. 약 10분 간 계속된 막말과 욕설은 보도가 나간 직후 바로 비공개로 전환됐습니다. 의사들이 국회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여실히 확인할 수 있는 취재였습니다.
 
‘수술실 CCTV 법안’의 재도전…이번에도 외면한 보건복지위 의원들
쏟아지는 비난 여론에 힘을 얻은 법안은 일주일 만에 15명의 국회의원 동의를 받아 재발의 됩니다. 하지만 정작 의료법 소관 상임위인 보건복지위 의원들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불과 일주일 뒤. 법원은 지난 2016년 수술실에서 방치 돼 있다가 과다출혈로 숨진 고(故) 권대희씨 유족에게 4억 3천만 원을 배상해 주라는 판결을 내립니다. 지혈과 수혈을 제대로 하지 않은 의료진에게 책임을 물은 겁니다. 수술대 위에 누운 아들의 모습을 CCTV 화면으로 통해 5-6백번씩 돌려 봐야 했다는 어머니, 그만큼 의사들과 맞서 싸우는 게 힘들었다는 이야깁니다. 법정공방만 무려 3년이 걸렸는데 결정적 증거는 바로 수술실 CCTV였습니다.
 
국회 토론회에 처음 등장한 대한의사협회…그리고 내년 총선
보도가 나간 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법안을 다시 살려야 한다며 청원 글이 올라오기까지 했습니다. 많은 언론사들이 사설면까지 할애하며 앞다퉈 함께 문제점을 지적 했습니다. 지금까지 토론회에 제대로 참석한 적 한번 없던 대한의사협회가 국회 토론회에 나왔습니다. 처음 공론의 장에서 논의가 시작된 겁니다.
 
안타깝지만 수술실을 바라보는 환자들의 걱정과 우려가 팽배합니다. 취재를 하면서 만난 환자들은 의료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의사들이 많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술 정보를 알 길이 없고, 전문성이 떨어지는 환자 입장에서는 사실 기댈 곳이 없습니다. 내년 4월, 21번째 총선을 치러집니다. 이번에 어렵게 발의된 법안도 그냥 놔두면 그전에 또 소리 소문 없이 자동폐기 절차를 밟게 됩니다. 21대 국회가 출범하면 이번과 다른 소식을 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MBC 남재현, 김성현, 최유찬, 임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