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7회 지역 기획보도부문_전두환, 부마항쟁 개입 최초확인_부산MBC 황재실 기자

 
805월의 전두환, ‘갑툭튀아니었다
 
전두환 씨가 방송사 자료화면에 거의 처음 등장하는 시점은 79년 10월 28일. 대통령 시해사건의 합수단장으로 중간수사결과를 보고하는 장면이다. 넘버 원, 투, 쓰리가 한꺼번에 제거된 10.26, 그리고 투 스타 전두환의 화려한 등장. 이 드라마는 10.26 열흘 전 발생한 부마항쟁에서 시작된다. 부마항쟁을 보고 ‘이 정권은 끝났다’라고 직언한 김재규는, ‘한번만 더 일어나면 내가 발포명령 내린다’고 응답한 대통령을 그 자리에서 쏘아 죽였다. 새로운 독재자의 출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적어도 79년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전두환은 말 그대로 ‘갑툭튀’… 맞다.
 
4.19혁명 이후 이어져온 그들의 유구한 교훈
 
그러나, 79년 이전까지, 정치군인 전두환의 행보는 한겹 한겹, 차곡차곡에 가깝다. 한국인 최초로 미국 특수전 학교를 졸업했고, 한국의 특수전 사령부 창설에 큰 역할을 했으며, 제1공수특전여단장을 지낸다. 부마의 허리를 꺾고, 광주를 학살했던 ‘공수’와의 특별한 인연. 여기에 대통령 친위조직 하나회를 이끌었다. 소위 임관 후 얼마 안 돼 그는 4.19혁명을 목격한다. 4.19는 전두환 씨를 비롯한 정치군인 집단에게 복음과도 같은 교훈을 남긴다. 바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발포명령자들. 이 무언의 교훈은 유구하게 전수돼 5.18 관련 군 문서의 대규모 조작과 소각으로 이어진다. 셀 수 없는 정황증거와 증언들 앞에서도 5.18의 발포명령사실을 맹렬히 부인하는 것은 어쩌면 그의 생존본능일지 모른다. 4.19혁명 이후 19년 만에 발생한 부마항쟁. 전두환의 보안사령부는 부마항쟁의 ‘교훈’을 아예 문건으로 만들어 전파했다. 부마항쟁 교훈의 핵심은 ‘초전박살’.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그 이면에는, 엄혹한 독재 하에서조차 꿋꿋이 성장한 민중, 그 분노의 저력을 확인한 군의 두려움이 존재한다. 이렇게 그들의 진압역사는 맥락을 갖고 흘러왔다.
 
60년 민주항쟁사, 이제는 팩트보다 맥락
 
부마항쟁 취재를 하면서 전두환과 광주를, 4.19를 각성한 이유는 이 ‘교훈’ 문건이 결정적이었다. ‘부마사태의 교훈’ 문건에서 시위군중은 더 이상 국민이 아닌 타격대상, 적이다. 4.19부터 부마, 광주까지. 진압의 역사가 ‘교훈’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져왔다. 우리 민주화운동, 특히 광주 5.18의 진상규명작업은 피해사실과 개별사건의 진위여부를 가리는데 초점이 맞춰져왔다. 디테일에 집중하는 사이, 우리는 어쩌면 그들이 어떤 맥락과 배경을 갖고 부마항쟁의 시민을 적으로 돌렸는지, 끝내 5.18을 저질렀는지, 큰 그림 찾기에 소홀했던 것일 수 있다. 심증은 넘치고 물증은 없는 형사사건에서, 범죄동기가 강력한 증거가 되지 않던가. 그들의 ‘교훈’의 역사에서 보면 80년 광주의 전두환 씨는 ‘갑툭튀’가 아니었다.
 
보도와 특집이 방송되고 난 뒤, 많은 피드백이 왔다. 부마와 광주의 공동 진상규명작업에 대한 의견들을 많이 보내왔다. 개인적으론, 광주 진상규명에 아주 작은 정황증거 하나 보탰다는 안도, 기쁨이 있다. 취재과정에서 광주. 안동MBC의 선후배 기자들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 이정희, 김철원, 김인정기자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