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7회 뉴스부문_댓글부대 최초 실명 폭로…“청와대 날마다 보고"_KBS 정새배 기자

하나의 사건으로 본 공영방송의 나아갈 길

KBS 파업뉴스팀 정새배 기자

 
댓글공작의 또다른 축이 드러나다
이명박 정권 당시 국정원의 온라인 여론 조작과 관련해 언론의 보도가 이어지던 올해 8월, 댓글부대의 또 다른 축인 군 사이버사령부에 대한 언론의 보도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국정원의 경우 새롭게 마련된 ‘적폐청산 TF팀’이 활동하면서 관련 정보가 흘러나왔지만 국방부는 본격적인 수사나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당시 김기현 전 503심리전단 총괄계획과장이 KBS 취재진을 찾았다.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를 통틀어 댓글부대에 가담한 사람 가운데 처음으로 실명 폭로자가 나온 것이다. 그것도 일개 말단 대원의 폭로가 아니라 댓글부대 심리전단의 사실상 부단장 역할을 하며 운영을 책임졌던 인물의 폭로였다.
폭로 내용 역시 구체적이었다. △청와대 국방비서관실로 댓글공작 결과가 날마다 보고됐다는 것 △김관진·한민구 등 군 수뇌부에게도 날마다 보고가 들어갔다는 것 △국정원 자금이 직접 지원된 내역 등 국정원과의 긴밀한 관계, 여기에 △부실했던 초동 수사와 △박근혜 정부 때도 이같은 댓글공작이 이뤄졌다는 증언이었다.
즉각 취재에 착수했고, 당시 군과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관련자들과 어렵게 접촉하면서 하나씩 실체에 접근할 수 있었다. 박근혜 정권의 초대 국방부 장관 내정자였던 김병관 전 후보자를 만나 자신도 당시 이같은 댓글공작에 대해 들어본 사실이 있다는 증언을 확보한 것은 이번 취재의 마지막 퍼즐조각을 맞춘 순간이었다.
파업뉴스팀의 당시 보도는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에서 수만 건의 조회 수를 기록했고, 보도 직후 대부분의 언론사가 이를 인용 보도하기도 했다. 파업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후속보도를 주도적으로 이어갈 수 없다는 한계가 있었으나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 기사를 최대한 유통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 하에 다른 방송에 취재진이 직접 출연하는 한편 핵심 제보자인 김기현 전 과장을 타사 취재진에게 연결해주기도 했다.
 
보도를 막은 KBS 보도국장단
보도 직후 국방부 내에는 군의 댓글 공작을 조사하기 위한 TF팀이 마련됐고, 지난 10월에 발표된 1~2차 조사 결과를 보면 파업뉴스팀이 당시 보도했던 내용들이 모두 사실로 확인됐다. 여기에 최근 군 사이버사령부 뿐만 아니라 기무사에서도 조직적으로 댓글 공작에 가담한 정황이 나오는 등 해당 사안에 대한 후속 보도는 2달이 지난 시점에도 현재 진행형이다. 파업뉴스팀의 보도가 이같은 대형 특종의 문을 열어젖힌 것이다.
하지만 파업 전, KBS 보도국장단은 보도에 난색을 표했다. 증언만으로는 곤란하니 확실한 물증을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여기에 보도국장단은 김 전 과장이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 캠프에서 안보특보 역할을 한 사실도 지적했다. 보도가 나가면 자유한국당에서 이를 근거로 문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해당 보도는 KBS 뉴스를 통해 나가지 못했고, 파업 이후 소셜 미디어를 통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취재 차량 대신 개인 차량을 직접 운전하고, ENG 카메라 대신 6mm 카메라를 들고 어렵사리 발품을 판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군 수사당국으로부터 압수수색까지 당했던 정보당국의 핵심 관계자가 ‘서류 뭉치’를 확보하는 건 불가능했다. 사실 김 전 과장은 스스로가 군 사이버사령부 댓글부대의 실질적 운영 책임자인 만큼 보도가 나가면 당장 본인부터가 수사 대상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 보도를 통해 모든 것을 폭로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여기에 핵심 당사자가 아니라면 결코 기억해낼 수 없는 세부적인 내용까지 구체적이고 일관되게 증언했다. 그렇기에 그의 증언은 그 자체로 물증이 되기에 충분했다.
내부고발자의 증언만으로 기사가 성립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엄격한 법리를 따지는 법원에서조차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 인정될 경우 증언만으로도 뇌물죄를 판단하는 판국에, ‘합리적 의혹’이라면 그 누구보다 자유롭고 적극적으로 제기해야 할 언론이 물증이 없다고 보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직무유기’에 지나지 않는다.
나아가 특정 정당이 반대할 수 있다는 이유로 보도를 하지 못한다는 이유라면 같은 기준을 대한민국의 모든 정당에 적용할 것인가. 그럴 경우 언론이, 기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역할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시민 사회’를 위한 성역 없는 보도, 공영방송의 역할
대한민국 헌법 제5조 2항은 다음과 같다.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 그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 특별히 ‘국민의 군대’라는 이름을 가진 군이 국민을 상대로 정치적 중립성을 어기고 여론 조작 활동을 벌였다. 정확히 헌법을 위반한 행위이며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를 견제하고 밝혀내는 건 공영방송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역할이며 공영방송의 사명이 가장 명확히 드러나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KBS는 그러지 못했다. 같은 일은 지난 9년 동안 일상처럼 이어졌고, ‘국민의 군대’가 국민을 상대로 제역할을 하지 못했듯이 ‘국민의 방송’도 그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번 보도를 통해 다시 한 번 파업 승리는 최종 목표가 아니라 시작일 뿐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상은 갈 길이 너무나도 멀지만, 반드시 제자리로 돌아가라는 시청자들의 격려이자 엄중한 경고로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