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4회 지역보도부문 기획보도상_5.18 37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_광주MBC 김인정 기자

5.18 발포명령자, 그의 이름은..

한 지역방송국 기자들의 무한추적기
올해 초 광주 금남로 1번지 전일빌딩에서 80년 5월 헬기에서 쏜 총탄의 흔적이 무더기로 발견되었다. 시민들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군이 총을 쏜 것이라는 ‘자위권’ 주장에 배치되는 학살의 또다른 증거였다. 사건으로부터 벌써 37년. 더 늦기 전에 발포명령자를 밝혀야 한다는 생각에 추적을 기획했다. 그러던 와중에 전두환의 회고록이 출간됐다. 반성과 참회는커녕 진실을 가리는 거짓뿐이었다. 한계를 두지 않고 도전한 취재였지만 회고록을 읽고나니 전두환 씨에게 고백이나 사과를 듣는 건 불가능해보였다. 진실을 찾기 위해 취재진은 광주항쟁 당시 한국과 밀접한 관계였던 미국 취재로 눈을 돌렸다.
 
취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전제는 어떠한 한계를 두지 않고 제로 베이스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발포명령에 대해 알고 있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모두 취재 대상에 넣기로 했다. 1996년 체로키 파일 폭로의 주역인 팀 셔록 기자와 몇 달간 협업하며 5.18과 밀접하게 관련된 미국 고위관료 등을 추적해나갔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시 미국 대통령으로 5.18에 관해 최고위급 정보를 보고받았을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었다. 이희호 여사의 추천 서한을 보내고, 질문지를 보내보라는 긍정적인 회신을 받은 취재진은 미국으로 향했다. 그러나 카터의 자택이 있는 조지아 주 플레인스까지 찾아간 취재진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터뷰를 거절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미국을 한 바퀴 돌 때까지 추적은 계속되었다. 그 결과, ‘들쥐’ 발언으로 공분을 자아냈던 존 위컴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을 비롯한 주요 인물들의 인터뷰를 성사시켰다. 특히 80년 5월 당시 광주의 운명을 결정한 미국 백악관 회의에 참석했던 당시 미국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부차관보 니콜라스 플랫을 어렵사리 접촉해 인터뷰를 진행하던 도중, 플랫이 내놓은 수기 메모는 놀라웠다. 전두환 씨의 이름이 수차례 언급된 이 수기 메모에는 백악관 최고위급이 모인 광주 관련 회의에서 누가 어떤 발언을 했고, 어떤 과정을 걸쳐 미국의 결정이 내려졌는지가 생생히 드러나 있었다. 존재조차 몰랐던 회의록 원본에 해당하는 자료가 37년만에 확보된 것이다. 한림대학교 정치행정학과 이삼성 교수는 이 자료가 “가장 결정적인 시점에 미국의 대한정책의 속살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역사적 문건”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37년 후 다시, ‘발포명령자를 물었던 이유
 
4.19 당시 발포명령자는 사형당했다. 자국민을 향한 군의 발포명령은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할 민감하고 중요한 문제다. 5.18 당시 국민을 향해 총을 쏜 신군부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전두환을 비롯한 가해 당사자들은 십 년이 넘도록 군 통수권자로 군림하며 증거를 대부분 없앴다. 전두환이 회고록을 내며 자신의 책임을 부인하는 배경에는 이러한 증거 인멸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 이런 까닭에 검찰과 재판부, 국방부의 협조를 받은 진상규명위원회도 5월 21일 전남도청 앞에서 민간인에게 총격을 명령한 당사자를 밝히는 데는 실패했다.
 
이번 취재에서도 신군부는 입장을 바꾸지 않았으므로, 전두환과 신군부의 이러한 거짓말을 다시 한 번 체계적으로 논박하려면 물증이 필요했다. 그런 측면에서 깨끗하게 사라져 있는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 주요 인물들의 광주항쟁 당시 동선은 중요한 취재 포인트였다.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처음 발굴한 대통령 기록물인 ‘최규하 면접기록부’는 ‘세탁’된 신군부의 동선을 일정부분 되살려주는 자료였다. 전두환 씨의 최측근이자 5.18 당시 광주와의 연관 관계를 철저히 부인해온 정호용 특전사령관이 광주에서 첫 집단발포가 있던 당일 광주의 상황에 대해 대통령 대면보고를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 자료를 통해 처음으로 밝혔다.
37년 전에 일어난 5월 발포명령의 진실을 고작 몇 달 만에 다시 밝히겠다는 도전이 무모했다는 걸 안다. 하지만 참혹한 국가폭력의 가해자가 여전히 살아있고, 심지어 피해자를 한 번 더 모욕해서라도 역사의 법정에서 자신의 혐의를 덜어내려 한다면, 진실과 거짓을 나란히 놓고 비겼다고 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기꺼이 증인으로 나서는 것이다.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그의 거짓에 맞서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갈 수 있는 최대치까지 멀리, 한 발짝이라도 더 진실에 다가가는 것이다. 그것이 이번 취재의 목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