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1회 뉴스부문_독일 말중개업자 박근혜와 독대_뉴스타파 심인보 기자

기자라면 누구나 사회부 수습일 때부터 이런 사실을 경험적으로 체득한다. 현장에는 무조건 남들보다 빨리 가야한다. 남들이 이미 지나간 현장에서 새로운 걸 찾으려면 몇 배는 더 힘이 든다. 그런 경험에 비추어 보면, 독일 취재는 처음부터 성공적일 가능성이 매우 낮았다. 대부분의 언론사가 이미 석달 전부터 독일 현지 취재를 시작했고 말 그대로 ‘마지막 한 방울까지’ 탈탈 털어 먹었다. 현지 취재를 도와준 독일 코디 선생도 너무 늦게 오셨네요, 하며 웃었다.
 
뒤늦었던 현장 취재.. ‘기본부터 다시가 낳은 행운
 
기본부터 다시 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최순실의 흔적을 처음부터 훑어나가는 수밖에. 한국 기자들이 수십 번 다녀갔을 슈미텐의 비덱 타우누스 호텔과 자택부터 찾아 갔다. 오랫동안 비어있던 자택에서는 정유라가 버리고 간 물건들과 전기요금 독촉장만 발견했다. 가택침입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열린 창문이 하나도 없었다. 이웃들은 시끄럽던 한국인들이 사라진 것을 반기는 눈치였을 뿐, 새로운 것은 아무 것도 몰랐다. 허탈한 마음으로 구글 맵을 들여다보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승마장이 하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얼른 검색해보니 한국 매체에는 사건 초기 딱 한 번 나온 곳이다. 곧장 움직였다. 아무 것도 없으면 승마장의 말이라도 찍어서 돌아오자는 심정이었다. 주인은 외출 중이었다. 무작정 기다렸다. 노을이 어스름 깔릴 무렵 승마장 주인 아놀드 빈터 씨가 돌아왔다. 그의 입에서 흥미로운 얘기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최순실 일가와 십여 년 전부터 친분이 있었다는 얘기부터 삼성과 코레스포츠가 정식 계약을 하기 전에 이미 정유라의 말 네 필이 자신의 승마장에 들어왔다는 얘기까지. 삼성의 뇌물죄 성립을 시사하는 강력한 정황 증거였다.
 
그러다 그의 입에서 “프레지던트 팍”이라는 말이 나왔다. 독일어는 몰랐지만 귀를 쫑긋 귀울였다. 통역을 해주던 코디 선생의 입이 문자 그대로 딱 벌어졌다. 그렇게, 독일의 일개 말 중개업자가 최순실의 소개로 청와대에 들어가 박근혜 대통령을 독대했다는 기사의 실마리가 잡혔다. 그러나 아놀드 빈터씨가 물증을 갖고 있지 않았기에 그대로 기사를 쓸 수는 없었다. 어렵게 아놀드 빈터씨와 함께 한국을 방문했던 정유라의 승마코치와 연락이 닿았다. 그는 모든 사실을 확인해주었고, 자신의 출입국 기록이 찍힌 여권을 촬영해 보내줬다.
 
부끄러움은 우리의 몫
 
솔직히 말해서 처음에는 기뻤다. 하나 건졌구나. 그러다 갑자기 옛일이 생각났다. 2011년, 우간다의 산업부 장관을 사전 약속없이 만나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당시 우리 취재진의 코디 가 그 장관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전화 한 통으로 장관을 불러내더니 카메라 앞에 앉혀주었다. 한국에서 준비해간 홍삼차를 선물했는데 우간다 산업부 장관은 선물을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 인터뷰를 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우간다라는 나라에 대해서 ‘좀 쉬운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하나 건졌다는 기쁨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부끄러움과 화가 더 커졌다.
 
방송이 나간 다음 날, 특검팀이 청와대 압수수색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독일의 말 중개업자가 보안검사도 거치지 않고 들어간 청와대를 국회 입법에 의해 구성된 특검팀이 들어가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비판하는 댓글이 많았다. 그날 특검팀의 모 검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취재한 내용을 수사에 활용하고 싶다고. 기꺼이 협조하겠다고 했다. 오늘 우리의 부끄러움이 더 상식적인 사회로 가기 위한 잠시의 퇴행이기를 진심으로 바랐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