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기획보도부문_수신고 280조의 그늘_KBS 박중석 기자

KBS 탐사보도팀 내부에서는 나름 정해진 아이템 선택의 기준이 있어요. 비록 성문화돼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몇 년 하다 보니 자연스레 형성된 것이지요.
첫 기준은 당연하게도 권력에 대한 부조리 고발과 비판입니다. 그 권력이 정부든, 검찰이든, 기업이든, 시민단체든, 혹은 더 작은 단체든 지요. 또 하나가  그 작동하는 권력이 살아 움직이는 현재 진행형이어서 피해가 우려되거나 혹은 발생하고 있고, 특히 사회적, 경제적 약자가 피해를 고스란히 입는 경우죠. 또 다른 차원의 문제는 아이템이 선선해야 하고, 누구나 알기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이 부분이야말로 가장 어렵고, 말처럼 쉽지 않더라고요.) 또한 취재과정에서 탐사적 기법이 내포돼 있으면 더 없이 좋겠고요. 마지막으로 똑떨어지는 제보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제보가 없더라도 독자적 취재를 바탕으로 완벽한 팩트를 구성하는 것이에요.
그렇다면 이번 농협개혁 2부작 보도는 이 기준에 맞는 것일까요? 저를 포함한 제작자의 고민은 아이템 선정부터 시작된 셈이에요. 올해 1월초 아이템을 할까 말까 만지작거리면서, 그리고 3월 말 본격적인 지방 취재를 시작하면서, 그리고 6월말과 7월초 마지막 더빙작업을 할 때까지 계속돼온 고민이었어요. 하지만 그 피해대상이 단 백 명일지라도,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지적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판단을 했어요.
하지만 수많은(240만 명이라고 하는데, 글쎄요. 더 적지 않을까요?) 농민조합원이라는 사회적, 경제적 약자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접촉할 수밖에 없는 조직인 지역농협과 농협중앙회, 이들과의 관 계를 둘러싼 다양한 문제점이 어제 오늘이 아니라면, 그 구조적인 문제점과 모순을 조금 더 치열 하게 파고들어갔어야 하는데, 뭐 이런 아쉬움은 많이 남지요.
또 취재하기로 맘먹은 지 며칠이 지난 3월 초, 우연찮게 엄지손가락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서 보름가까이 병원신세를 지면서 취재도 제대로 못하고 허송세월(?) 보내야 했던 불운만 없었더라면 하는 때늦은 어리석음도, 좀 더 똑똑하게 방향성을 짚고 취재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더 많은 팩트를 수집하기 위해 한걸음만 더 움직였어야 했다는 뒤늦은 자책도, 모두 1,187개 지역농협의 방대한 결산 보고서를 입력하고 분석을 할 수 있도록, 고차원 함수 같은 고급은 못하더라도 최소한 평균, 합산 등의 초급 엑셀정도는 미리 배워놓을걸 하는 게으름에 대한 반성까지도요.
이번 아이템의 상당부분은 적은 보수에도 꿋꿋하고 묵묵하게 일해 준 탐사보도팀내(정확하게 말 하면 탐사보도팀내 탐사파트) 전문리서처와 리서처, 그리고 NLE 편집요원들의 몫이었어요. 특히 500개 가 넘는 전국 지역농협의 결산보고 내용을 하나하나 엑셀파일 형태로 입력하고, 통계를 내 고, 의미 있는 수치를 찾기 위해 구토가 날 정도로 엑셀시트를 봤던 그 한 달이 넘는 엄청난 작업이 있었기에 가능했어요. 이런 고통스런 작업의 내용이 결국 방송내용에는 단 몇 줄로 기입할 수 밖에 없었다는 점 양해주겠죠.
가령 수많은 예가 있지만, 그 하나로 “탐사보도팀은 1,187개 지역농협의 절반인 농협의 결사보고서 를 입수했다. 주목한 항목은 두 가지였다. 농협 직원 인건비와 각종 경비를 뜻하는 판매관리비 그리고 농민들의 영농지도에 쓰는 교육지원사업비였다. 분석 결과 두 예산의 비중은 8.8대 1.2로 교육지원사업비가 판매관리비의 1/7수준이었다. 농협이 농민을 위한 사업예산에는 인색했다는 게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라는 것처럼요. 다시 말하지만 이 몇 줄의 방송멘트에는 사실 엄청난 노력이 쏟아 부은 결과물이에요. 이들이 바로 탐사보도물을 빛내주고 있는 주연 같은 조연들인 전문리서처 류한조씨를 비롯한 최미연, 서혜진, 김새별, 그리고 윤현정씨이에요. (현정씨는 사실 취재기간 내내 저한테 괴롭힘을 당하며, 열심히 조사했던 친구인데, 방송하기 두 달 전 회사를 옮겼고, 방송 직전 ‘잘 보겠다. 고생했다’는 메일을 보내왔어요.) 다들 정말 고마워요.”
그런데 말이죠, 가끔 있어요. 전문조사 요원들이 별거 아니라는, 기자가 다 하면 되지 않느냐는 식 이죠. 엑셀에다, GIS, SNA 다 하면 좋죠. 그런데요 그러다가 기자들 정말 엑셀 연산식과 복잡한 수식공부하다 끝나요. 과천 정부청사 1동에 근무하는 기재부 공무원들한테, 대전 청사에 있는 통계청 업무까지 맡겨보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막바지 NLE편집을 하며 밤잠을 설쳐가며, ‘화이트’나간 거까지 세심하게 색 보정하고, 그림 괜찮은 지 다시 보고, 심지어 편집도 하고, 음향 조절하고, 특수효과, CG의 효과까지 모두 집어놓는 등 이번 방송물을 그래도 볼 만큼의 수준으로 만들어준 최윤원씨(아마도 탐사보도 와 같은 고발물 분야에서 NLE편집의 최고수준을 보여주는 숨은 일꾼이에요. 최근 들어 가족문제, 또 중대한 고용문제 등으로 이런저런 맘 고생 많았을 윤원씨, 정말 욕봤어요.) 그리고 그 밑에서 겁나게 고생했지만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즐겁게 일했던 야무진 주은정씨, 정말 고생 많았어요. 이들이 잠못 이루며 새벽까지 편집실에서 오도카니 앉아 치러낸 제작의 고통과 열기가 없었다면 이번 아이템은 불가했을 거에요. 그리고 또 한명의 주역이 있지만 생략하죠. 여기에 이것저것 행정 을 도맡아 궂은일을 해준 임연주씨도 수고했어요.
바쁜데도 기획과정, 구성과정에서 원고 끝까지 읽어보며 보석 같은 도움을 줬던 동료들(!!), 취재 도중 혼자 국제팀으로 가버렸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아이템을 같이 했던 후배 이병도씨, 그리 고 도중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모든 걸 척척 해냈던 후배 정수영씨, 구구절절 말 안 해도 알죠? 고마워요. 무엇보다도 지역사정을 잘 알려줬고, 오랜 시간 토론을 하고, 바쁜 와중에도 많은 도움 을 줬던 수많은 지역농협의 대의원과 이사, 감사님들에게도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해요.
사실 현재 전국적으로 지역농협은 1,185개에요(취재 당시는 1,187개였는데, 그새 합병했더라고요.) 전국 곳곳에 농협이 있는 셈이죠. 이 농협을 상대하지 않고선 사실상 농민들이 농사를 짓기란 어 려운 구조에요. 우리나라 농정의 모든 문제(특히 실패)를 오롯이 농협에 떠넘겨서도 안 되겠지만, 지금의 농협이 변하지 않고선 농민들의 삶이 개선될 수 없다는 것또한 엄연한 진실이에요. 여전히 협동조합보다는 금융인으로 살고 있고, 살려고 하는 상당수 농협직원들. 그리고 구임금체계를 여전히 고수하는 일부 지역농협, 농협을 자신의 것이 아닌 시혜의 기관으로만 여겨온 농민들. 자립적인 기구가 아닌 정부산하기관으로서만 방패삼아 좌지우지해왔던 정부 관료들. 그리고 농협개 을 이야기하며 위로부터의 요구만 해왔지 정작 농촌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다수 자작농이자 소농의 어려움은 애써 외면하는 정부당국. 그 모든 것을 제대로 바꿀 수 있는 힘과 동력 , 그것은 아래로부터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요.
지난 2004년 경북 장천에서 그랬던 것처럼요.
이번에 취재를 통해 일부에서는 그동안 못 받았던 벼 생산지도비를 돌려받기도 하고. 일부 사람은 경매비용을 돌려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물론 방송이후 농협직원들로부터 엄청난 욕을 먹었지 만 그것도 다 인연이라 생각해요.
취재 도중 가장 오랫동안 머물며 취재했던 곳이 바로 전북 군산지역이에요. 그 군산의 금강하구둑 에 가면 좋은 교사였고, 서정시인이었던 어느 선생의 시비가 있는데, 그 선생의 시가 새겨져 있어요.
“이 땅에서 진짜 술꾼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술을 마셔야 한다.
이 땅에서 참된 연애를 하려거든 목숨을 걸고 연애를 해야 한다.
이 땅에서 좋은 선생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교단에 서야 한다.
뭐든지 진짜가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목숨을 걸고……”  정말 힘들고 어렵다는 시기. 좋은 기자가 되기 위해선 시인의 말처럼 목숨은 아닐지라도 뭐라도 하나 걸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