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회 기획다큐부문_ 급발진은 있다_KBS 이석재 기자

지난 2012년 10월 시사기획 창 <급발진, 그들은 알고 있다> 편이 방송된 뒤 후속편에 대한 생각은 계속 하고 있었지만 여건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후속편을 끌고 갈만한 내용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뒷짐만 지고 있는 정부와 운전자 실수로만 돌리는 자동차 제조사의 입장은 후속편 취재 욕구를 끊임없이 자극했습니다.
틈틈이 급발진에 대한 사전 취재를 하던 중 2013년 1월 분당에서 일어났던 급발진 의심 사고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관심을 끌었던 것은, 해당 사고를 조사했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운전자 과실은 아니라고 판단했고, 사고 당시 영상까지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사고 당사자에게는 죄송한 얘기이지만, 뭔가 확 당기는 느낌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영상을 어떻게 확보하느냐 였죠. 몇 번 시도를 해봤지만, 태생적으로 기자를 싫어하는 국과수 교통사고 분석팀에서 영상을 빼내기는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도 지난해 11월이었던 것 같은데요,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자동차 공학회 주관으로 열리는 자동차 사고기록장치 표준화 워크샵에서 급발진 관련 세미나가 예정돼있고, 그 자리에서 해당 영상이 공개될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문제의 분당 사고를 조사했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사고기록장치 표준화 관련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몇 가지 급발진 사고 영상들을 함께 보여줄 예정이라는데, 그 문제의 사고 영상이 발표 과정에서 공개될 수도 있다는 거였습니다.
그 곳에서 본 영상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급발진 그들은 알고 있다> 편을 만들면서, 그리고 후속편 사전취재 과정에서 많은 블랙박스 영상을 봐왔지만, 그 영상은 확실히 달랐습니다. 운전자 모습이 매우 정확하게 찍혀있어 운전자 실수로 일어난 사고가 아니라는 점이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당시 워크샵에 참석했던 80여 명의 자동차학과 교수들과 교통사고 분석 전문가들의 반응은 후속편 취재를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모두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 영상을 보고 운전자 과실이라는 주장을 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공공연하게 자동차 제조사 입장을 앞장서서 대변해온 모 대학 교수까지도 아무 말을 못했습니다.
사고 운전자에게는 죄송하지만, 그 영상을 방송에 쓰기로 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 오클라호마에서 열렸던 급발진 사고 관련 재판에 대한 취재 역시 우연히 돌파구가 생겼습니다. 당시 미국 내 도요타 급발진 사태는 대규모 리콜에, 각종 소송까지 벌어지면서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었고, 문제의 오클라호마 캠리 급발진 사고 재판은 그 정점이라고 할 만 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국내 언론들은 대부분 간단하게 기사 처리를 했습니다. 기사 내용도 언론사에 따라 많이 달랐습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평소 잘 알고 지내던 국제 변호사를 통해 문제의 오클라호마 재판 속기록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이클 바 라는 전문가가 법정에서 캠리 승용차로 급발진을 재현할 수 있었다는 증언을 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미국 취재가 시작됐습니다. 현지에서 재판에 참여했던 전문가들을 대부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그들로부터 의미 있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운이 좋았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오클라호마 재판 결과에 대해 토요타는 처음부터 끝까지 부인으로 일관했습니다. 어디에서 들은 얘기인지 모르겠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토요타 본사에서 한국 법인을 통해 보내온 서면 답변서를 보면 2005년 식 캠리 승용차로 급발진 현상을 재현했던 전문가의 주장, 사고 운전자 측 변호사가 밝힌 내용, 심지어 공판 과정이 기록된 속기록 내용까지 모두 취재진이 잘못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밝혀왔습니다. 토요타 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식 인터뷰에 앞서 토요타 코리아 측은 취재진이 미국 현지에 직접 다녀왔는지 무척 궁금해 했습니다. 수차례 묻더군요. 집요했습니다.
인터뷰가 끝난 뒤 토요타 코리아 측은 본사가 정해준 대로 인터뷰 할 수밖에 없었다며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뭐가 미안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미국에서 급발진 사고를 은폐했다는 이유로 1조3천억 원의 벌금을 물게 된 토요타가 언론사를 상대로는 그 버릇을 아직 고치지 못했다고 보여졌습니다.
급발진 취재 과정에서 현대기아자동차의 대응은 상식 밖이었습니다.
우왕좌왕하면서도 일관된 입장을 유지하더군요.
그들을 보면서 자꾸 도요타가 떠올라 씁쓸했습니다.
취재과정에서 현대기아 측의 한 책임 연구원이 제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돌에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느냐고…있다면 과학적으로 증명이 가능하냐고 묻더군요.
급발진이 바로 그런 거라고 하더군요.
무슨 궤변인지 모르겠지만 현대기아라는 대기업의, 그것도 각종 첨단 장치가 집약된 자동차라는 제품을 만드는 세계 5위의 자동차 제조사의 책임연구원이라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현대기아자동차에 영혼이 있냐고…있다면 도덕적으로 증명이 가능하냐고요.
그냥 웃기만 하더군요.
현대기아자동차라는 회사가 바로 그런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