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회 지역보도 뉴스상_ 원전 성적서 위조, 부품비리 (연속,단독보도)_KBS부산 공웅조 기자

저는 7개월 된 딸아이 다임이의 아빠입니다. ‘다임’ 지극히 사랑하는 님을 뜻하는 옛 우리말 이름입니다. 아비인 저에게 딸은 지극하다는 표현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쓸 수 있는 존재입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이지요.

우리나라에서 에너지 정책을 결정하는 일부 엘리트 계층에게도 조건없이 사랑을 주는 존재가 있습니다. 원자력 발전입니다. 사고가 잇따르고 세계 여기저기서 위험성을 강조해도 이들에게는 들리지 않습니다. 이미 너무 오래, 너무 멀리 와버렸는지 모릅니다.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 주변 주민들은 최근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잊을 만하면 들려오는 원전 사고소식, 최근 들어서는 점점 대범해지는 한국수력원자력 직원들의 부패, 비리 소식 때문입니다. 자칫 원전에서 사고가 날 경우 주민들의 어장, 논밭, 가축은 물론이고 생명이 위협받기 때문에 주민들은 원전 주변에 사는 것 자체가 조마조마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수력원자력에 정신적 피해보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번 취재는 원전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신도시에 사는 저의 절박함이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울진, 영광, 울산 등 원전이 들어서있는 다른 곳의 주민들도 마찬가지 마음일 겁니다. 원전 직원들이 납품업체로부터 관행적으로 돈을 받고, 납품업체와 검증업체, 한국전력기술, 한국수력원자력이 ‘뒷돈’으로 똘똘 뭉쳐 시험성적서를 위조하고 불량 부품을 납품하고 그 대가로 돈을 주고받았습니다. 원전 안전에 직결되는 부품이라 시험성적서 제출이 의무화되고 여러 단계의 검증을 거치도록 했지만 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했습니다. 국민의 안전을 생각하기보다 납품을 계속 유지하고 자기 주머니를 챙기려는 사람들의 도덕적 해이는 극에 달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원전비리 연속보도는 수십 년 동안 원자력 산업을 독점하며 견고한 자신들만의 성을 쌓아온 ‘원전 마피아’들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유지되는지 밝혀내는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원자력 업계에서 이른바 ‘성골’, ‘진골’ 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너서클에서 배제된 사람들을 취재해 한수원 내부의 도덕 불감증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방송의 특성상 ‘새로운 화면’을 시청자들에게 계속 보여주지 않으면 시청자들이 외면한다는 부담을 안고서도 꾸준히 원전 관련 보도를 이어 나갔습니다. MBC와 민방이 같은 이유로 원전 비리 관련 보도를 대부분 단신 기사로 처리하는 것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새로운 내용이 하나라도 발견될 경우 시청자들에게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고 ‘원전’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시청자들이 가질 수 있게끔 노력했습니다. 국가 재난방송으로서 KBS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크게 작용했습니다. 원전에서 일어나는 작은 사고, 크지 않은 것 같은 비리도 안전에 직결되고 사고가 날 경우 겉잡을 수 없는 피해가 나기 때문입니다. 원전비리 사건의 가장 중요한 정보원인 ‘원전비리 수사단’의 입을 열게 만드는 게 가장 큰 난관이었지만 부족한 자료화면이 리포트의 주제에 맞게 멋진 화면으로 편집이 된 것은 미디어텍 김종수 동지의 뛰어난 감각과 성실성이 빛을 발했기 때문입니다. 

20여 편의 보도 중 대부분의 ‘배경’은 한국수력원자력과 원전비리를 수사하는 부산지검 동부지청이었습니다. 말하지 않으려는 검사들과 조각 조각난 증거로 퍼즐처럼 끼워 맞춰 비리의 일단을 추리해보려는 기자 수십 명의 경쟁이 때로는 특종을, 때로는 낙종을 만들었습니다. 그 와중에 취재팀의 노준철 기자가 발굴한 열교환기 시험성적서 위조 건은 원전비리 수사와 관련 보도의 판도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부산의 화전산단이라는 곳에 있는 한 업체가 이번 원전비리의 발단이 된 시험성적서 위조를 관행적으로 해왔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 격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주변을 수소문한 결과 자신들이 만든 시험성적서와 한수원에 제출하는 성적서가 다른 업체를 찾았습니다. 전형적인 시험성적서 위조 수법입니다. 간단해 보이는 이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원전 전문가 여러 명의 자문을 구했습니다. 수십 년 동안 고질적으로 이뤄져온 원전비리가 왜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는지를 설명해주는 교훈이기도 했습니다. 보도 이후 검찰은 최초 성적서 위조가 이뤄졌던 제어케이블 외에 다른 원전 부품에도 광범위하게 성적서 위조가 이뤄진 사실을 확인하고 대대적인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그 결과 7개 검찰청이 동시에 수십 곳의 원전 부품 업체를 동시 압수수색하는 이례적인 상황도 발생했습니다.

검찰의 원전비리 수사는 여름 뙤약볕의 기세가 꺾일 즈음에는 마무리 될 것으로 보입니다. 비리의 몸통이라는 한국수력원자력 전 사장을 구속한 검찰이 ‘몸통 중의 몸통’이라는 전 정권 실세들에게도 칼끝을 겨눌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일인데요. 이번 기회에 비리의 싹을 발본색원해서 한 달 가까이 원전비리 보도를 하지 않게 되길 바랄 뿐입니다. 원전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팽팽하지만, 원전에 사고가 나서 우리 국민 대다수가 피폭되는 무시무시한 결과를 바라는 국민은 없을 테니까요. 여느 때보다 길고 무더웠던 남부지방의 폭염에 지친 시청자들에게 원전 뉴스는 더 짜증을 불러 일으켰을 텐데 성실히 열심히 했다고 상을 주신 거라고 알고 앞으로도 용맹정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