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4회 기획보도부문-탐사보고서 기록_어시장의 법칙_YTN 강정규 기자

덜 싱싱한 생선, 더 비싸게 사 먹고 있다면?
 
회삿돈으로 도매상 외상값 대준 수협
이번 취재는 어민들의 협동조합 수협에서 시작됐습니다. 경기도 구리에 있는 수협 공판장에서 중간 도매상인 ‘중도매인’들의 외상값을 회삿돈으로 대신 내주고 있다는 제보였습니다. 내부 감사자료를 보니, 외상 한도를 초과한 중도매인들이 경매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전산 조작까지 해줬습니다. 전국의 수협 공판장 6곳 중 5곳에서 비슷한 일이 적발됐습니다. 이유는 뭘까?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수협을 비롯한 도매시장법인들은 경매에 부칠 수산물을 생산지에서 끌어와야 합니다. 대신 거래액의 6% 이내에서 법정 수수료를 받죠. 그러나 실제론 중도매인들이 이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외상에 발목 잡혀 경매에 참여하지 못할 경우, 수수료 수입뿐만 아니라 시장에서 거래되는 물건도 줄어들게 됩니다. 수협이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중도매인들에게 의존하다 보니 과도한 편의를 봐줄 수밖에 없던 겁니다.
 
시늉뿐인 경매…불법투성이 도매시장
단지 수협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서울 가락시장에서 지난해 실태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전체 중도매인의 절반이 넘는 270명이 범법자가 됐습니다. 도매시장에 만연했다고 알려진 ‘형식경매’·‘기록상장’의 불법 거래 관행이 실제로 확인된 겁니다. 중도매인들은 대부분 생산지에서 물건을 직접 사 옵니다. 차익을 남기고 소매로 넘기면 간단한데, 현행법은 반드시 도매시장법인을 거치도록 했습니다. 이미 주인이 정해진 물건인 만큼 경매는 시늉뿐입니다. 그런데도 경매 수수료는 꼬박꼬박 내야 하죠. “앉아서 통행세만 걷는다”, “손 안 대고 코 푼다” 도매시장법인에 대한 불만이 팽배했습니다. 중도매인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에 맞추느라 도매법인에 판매를 위탁하는 ‘가짜 출하주’를 만들었습니다. 의무 거래 실적을 채우려고 제철도 아닌 생선을 사고판 것처럼 꾸미고 수수료를 물기도 했습니다. 이런 웃지 못할 촌극,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2007년 대구에서도 이런 식의 ‘불법 거래’가 대대적으로 적발된 적 있습니다. 캐면 캘수록 뿌리는 깊었고, 상처는 곪을 대로 곪은 상태였습니다.
 
소비자가 내는 ‘중복 경매’ 수수료…그들에겐 ‘화수분’
모순을 더 두드러지게 만든 건 ‘중복 경매’입니다. 바다에서 잡아 올린 생선은 항·포구에 풀린 뒤 경매로 팔립니다. 자연의 일부였던 수산물에 처음 시장 가격이 매겨지는 순간입니다. 이후 유통 단계별 매매차익과 운송비 등을 덧붙이면 그만인데, 대도시 도매시장에서 또다시 경매에 부칩니다. 불필요한 절차를 한 번 더 거치느라, 신선도는 떨어지고 가격은 오릅니다. 결국, 피해는 소비자들에게 돌아갑니다. 덜 싱싱한 생선을 더 비싸게 사 먹게 되는 겁니다. 국민 생선이라고 불리는 고등어 한 손의 중복 경매 수수료는 150원 남짓, 낱개로 보면 체감이 잘 안 되는 적은 돈입니다. 그러나 전체 수산물로 확대하면 연간 460억 원 규모로 불어납니다. 도매시장법인들이 법으로 보장받는 안정적 수입이죠. 돈이 된다고 알려지면서 한 건설업자는 몇 해 전 업계 선두의 도매시장법인 강동수산을 120억 원 넘게 주고 사들이기도 했습니다. 규모가 훨씬 큰 농산물 도매시장법인의 경우 이미 대기업과 사모펀드 자본이 차지한 상태입니다.
 
기득권의 집요한 반대…번번이 좌절된 개혁
그동안 공영도매시장은 여러 번 수술대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개혁은 번번이 좌절됐습니다. 현행법 아래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도매시장법인들이 자본력을 동원해 집요하게 반대한 결과입니다. 재작년까지 국회 농해수위에서 제도 개선 법안 심의에 관여한 고위공무원(수석전문위원)은 퇴직 후 곧바로 수산물 도매시장법인 협회의 회장으로 갔습니다. 도매시장법인들이 개혁 입법을 저지하기 위해 영입한 겁니다. 농산 쪽 도매시장 법인 협회의 상근부회장 자리는 15년째 퇴직 관료들이 꿰차고 있습니다. 정부가 개혁에 소극적인 배경 중 하나입니다. 결국, 공영도매시장은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습니다. 가락시장의 경우 1992년 20만 톤이었던 수산물 거래량이 지난해 9만 톤으로 반 토막 났습니다. 천문학적 혈세가 투입된 공영도매시장은 그렇게 쪼그라들고 있습니다.
 
무관심 속 방치된 부조리를 <기록>하다
이번 취재는 이슈와 먼 데다, 복잡하기까지 합니다. 요즘 언론의 보도 제작 환경에서 다루기 힘든 주제입니다. 기존의 농수산물 관련 보도를 봐도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농산물 유통 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치중돼왔습니다. YTN은 무관심 속에 오랜 세월 방치된 수산물 도매시장의 부조리를 들춰냈습니다. 정부와 지차체가 실태조사에 나섰고, 경찰도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국회는 제도 개선 입법에 속도를 내기로 했습니다. 물론 수십 년째 이어져 온 관행이 하루아침에 바뀌긴 어렵습니다. 다만, YTN의 이번 <기록>이 변화를 앞당기는 마중물이 되길 기대해 봅니다. 끝으로 앞에서 끌어주신 선배들과 뒤에서 밀어준 후배들, 그리고 취재에 협조해 주신 모든 분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