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를 인식하는 행정의 차이_G1 강원민방 조기현 기자

 

G1 강원민방 조기현 기자

저는 강원도 속초와 고성, 양양을 담당하고 있는 기자입니다. 마을 뒷산이 설악산이고 눈앞에는 동해가 펼쳐져 있으니, 참 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맞습니다. 사계절 먹을거리가 풍부하고, 사람들 인심도 좋은 지역입니다.

하지만 잊을 만하면 터지는 재난·재해도 있습니다. 겨울에는 눈이 1미터 넘게 쌓이고, 봄에는 지독한 가뭄이 이어집니다. 여름에는 장마 피해가 적지 않고요. 가을에는 무시무시한 태풍도 찾아옵니다. 반복되는 재난·재해 현장을 직접 발로 뛰며 취재하다보니, 어느 정도 둔감해진 것도 사실입니다. 점점 그림이 되는 현장 위주로만 쫓아 다니게 된 것이죠. 재난·재해로 인해 사람들이 겪는 고통에 공감하고, 도움이 되려하기 보다는 자극적인 내용만 기사에 담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취재를 마치고 방송한 뒤에는 그걸로 끝이었죠.

그런 의미에서 이번 미국 재난·재해 연수는 제게 큰 교훈을 주었습니다. 재난·재해를 겪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부 차원에서 이런 문제들을 깊이 논의할 수 있는 장이 마련돼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하려는 얘기는 바로 재난·재해 현장에서 피해자들이 겪는 트라우마를 대하는 정부의 시각에 관한 것입니다.

연수팀이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미국 뉴올리언스였습니다. 10년 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도시 전체가 파괴됐던 곳이죠.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도 카트리나는 인재人災로 평가되고 있었습니다. 미국 공병단이 미시시피 강의 범람을 막기 위한 제방을 당초 설계보다 부실하게 시공하면서 큰 피해로 이어졌던 것이죠. 당시 2천5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주민의 80%가 집을 잃었습니다. 정부의 방침이 구조에서 통제로 바뀌면서, 미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재즈의 도시 뉴올리언스는 ‘감옥 도시’로 변했습니다. 허리케인이 휩쓸고 지나간 뒤에 지방 정부 책임자들은 중앙 정부로부터 내려온 복구비용을 횡령하기도 했었죠. 처음에는 자연재해로 시작됐지만, 국가와 지방정부의 무능한 대처로 인해 엄청난 사회적 재앙이 된 것은 최근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일련의 참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겪고 있는 트라우마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어 보였습니다. 2005년 9월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뒤, 이재민들을 위한 임시 거처가 대규모 실내체육관인 ‘슈퍼돔’에 마련됐습니다.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이 대거 파견돼 이재민들을 돌봤는데, 주목할 만한 것은 거기에 트라우마 치료를 위한 전문 상담사와 의료진이 포함돼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정부는 사고 발생 직후부터 트라우마 피해자들이 원하는 기간만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물론, 제가 당시의 피해를 경험해보지 못했고,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본 것이 아니
기 때문에, 미국의 트라우마 치유 시스템이 얼마나 잘 갖춰져 있는지에 대해 말씀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들은 이미 실천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카트리나 참사 이후 미국은 정부는 물론, 시민사회의 대처 지침까지 포함된 재난 대응 시스템을 갖추게 됐고, 매뉴얼에는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가이드라인도 담겨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며칠 전 삼풍백화점이 붕괴된 지 꼭 20년이 되던 날이었습니다. 502명의 희생자와 6명의 실종자, 937명의 부상자를 낸 대형 참사였죠. 모든 중앙 언론이 삼풍백화점 참사에 대한 기사를 쏟아 냈습니다. 그중에 기억에 남는 기사가 있어 소개합니다. <“아직도 악몽”… ‘삼풍 참사’ 피해자 심리 치료 절실>이라는 기사였습니다. 당시 민간 구조대원과 인근 병원의 간호사의 인터뷰 기사였는데, 그들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는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대형 사고나 재난으로 인한 트라우마 치유를 위해 국립 트라우마센터를 설립하도록 한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1년이 넘도록 통과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매번 큰 참사를 겪고도 ‘외양간조차 고치지 않는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재산적 손실을 보상해주는 것만큼, 피해자들이 겪고 있는 트라우마 치유에도 신경 써야 합니다.
피해자들이 겪는 어려움에 조금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우리 기자들이 앞장서서 부르짖어야 할 부분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