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한국의 ‘보도 참사’가 만나다_MBC 이용주 기자

76-1 재난재해과정

미국과 한국의 ‘보도 참사’가 만나다

2014 저널리즘 아카데미 재난재해 전문 취재과정(미국)

MBC 이용주 기자

Ⅰ. 들어가며
2014년 4월 16일, 전대미문의 참사 속에서 언론 보도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참사 그 자체였다. 받아쓰기, 무비판 보도, 일방적 홍보 등으로 내내 얼룩졌다. 내가 맡고 있는 SNS 뉴스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속보만을 바라보고 달린 결과였다. 속보만이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길이라고 여겼다. 타사보다 조금 더 빨리 트윗을 하려 노력했다. 커지는 리트윗 숫자를 보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했다. ‘이 기사를 트윗 하는 게 어떤 의미일까?’ 이 같은 생각은 나중으로 미뤘다. 일단 막고 보는 게 급했기 때문이었다.

급기야 한국 기자들은 ‘기레기’로 전락했다. 나를 향한 꾸짖음, 우리를 향한 냉소였다. 거부할 방법은 없었다. 거부하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딛고 일어서고 싶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진정 알고 싶었다. 미국 언론은 어떤 경험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그들은 어떤 실패를 겪었고,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으며 또 어떤 대안을 갖고 지금은 어떻게 실천을 하고 있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궁금했다. 나의 재난재해 전문취재 연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됐다.

76-2 뉴올리언스

Ⅱ. 경험과 실패
2005년 8월 29일, 카테고리 5등급의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중심으로 미국 남동부를 강타했다. 정확한 인명 피해 규모를 집계하지 못했을 정도로 카트리나의 위력은 엄청났다. 이재민 수십만 명에, 알려진 사망·실종자만 2,500여 명. 미증유의 재난 앞에 미국 언론은 무력한 모습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언론은 초기 단계부터 실패했다. 허리케인의 위력과 경로 등에 대해 너무나 무지했고, 대피 명령을 알리는 데 지체했다. 더 큰 문제는 카트리나가 지나간 뒤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이미 제방이 무너져서 침수 지역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주요 언론들은 카트리나가 별다른 피해를 일으키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정부 발표의 받아쓰기였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뉴올리언스 돔 경기장(슈퍼돔)과 컨벤션 센터 등지에 집과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대규모로 모여 있는 상황에서 자극적이고도 선정적인 미확인 루머가 기사의 외피를 쓴 채 나타나기 시작한다. 당시 한 경찰서장은 TV에 출연해 돔 경기장에서 살인과 성폭행이 자행되고 있다고 울먹이며 증언했다. 너와 나 가릴 것 없이 언론은 앞다퉈 대서특필했고 미국전역은 들끓었다. 뉴올리언스 컨벤션 센터에 있는 한 냉동고에 시신 30구가 보관돼있다는 기사도 나왔다. 언론은 뉴올리언스 전역을 아비규환의 생지옥으로 탈바꿈시켰다.

 

Ⅲ. 평가와 대안
77-3 타임스피큔① 검증 또 검증 “우리가 본 것만 쓰자”
뉴올리언스의 대표 일간지 타임스 피큔The Times-Picayune에서 일했던 마이크 펄슈타인 기자는 카트리나 취재 당시 우연히 CNN 뉴스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브라운관에 비친 광경은 믿을 수 없는 대재앙 그 자체였다. 자신들이 현장을 직접 취재하면서 겪은 현실과 너무 달랐다. 펄슈타인 기자는 동료들과 급히 머리를 맞댔다. 짧고 굵게 진행된 회의. 모두가 합의한 결론은 단순했다. “우리가 본 것만 기사로 쓰자!”

이들은 우선 시신이 다수 보관돼 있다는 냉동고를 수소문했다. 확인 결과 냉동고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옥상으로 대피한 시민들이 적십자사의 구조 헬기에 총을 쏘고 있다고?’ 파악해보니 총격이 있긴 있었다. 정신 이상자로 추정되는 1명의 소행이었다. 총격이 난무하는 것으로 묘사된 기사 탓에 한나절 동안 헬기가 구조 활동에 투입되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웠다고 한다. ‘돔 경기장에서 살인이 버젓이 일어난다고? 어린이가 성폭행 당했다고?’ 지나칠 수 없는 문제였다. 직접 가봤다. 실제 사망자는 1명. 발코니 추락사였다.

펄슈타인 기자는 당시 주요 언론 보도뿐만 아니라 정부 측의 발표도 믿지 않았다고 한다. 공보 시스템이 무너진 상황에서 ‘직접 확인’이라는 원칙에 따라 움직였기 때문에 다른 매체와는 전혀 다른 기사를 썼다. 조직폭력배가 생수와 기저귀를 나눠주는 등 사람들이 서로 도우며 대처하는 뉴올리언스의 ‘진짜 이야기’를 다뤘다. 사실 보도를 뚝심 있게 밀고 나가자 유수의 언론들도 따라왔다.
혼자 ‘물을 먹을 수 있다.’는 공포는 없었을까? 펄슈타인 기자는 원칙을 강조했다. “‘무언가 터뜨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선정 보도를 하면 잠시 시선이야 끌겠지만 사실 보도를 해야만 오래 신뢰를 받을 수 있습니다. 진실을 정확하게 보도해야 당국과 시민들이 올바르게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 써야 역사에 남습니다.”

78-4 FEMA② 비판할 때 고려할 것은 없다
카트리나 당시 미국 연방재난관리청(FEMA)은 늑장 구조와 부실 대응으로 화를 키웠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연방재난관리청은 국가위기대응법률에 근거를 둔 비상 계획을 갖고 있다. 위기가 생기면 실행해야 하는 계획인데, 계획 자체를 외부에 알리지 않아 이를 숙지하고 있는 기관이 없었다. 그래서 본부와 현장 간의 혼선은 극심했다. 소통이 되질 않으니 구조가 원활할 리가 없었다.

카트리나 당시 현장 기자들의 취재를 지휘한 마크 슐라이프슈타인 기자는 연방재난관리청에 대한 비판 기사 또한 빼놓지 않았다. 슐라이프슈타인 기자가 정부나 구조 당국을 비판할 때 고려했던 사항은 무엇이었을까?

고려 사항? 그런 건 없다. 비판 시점? 바로 쓴다. 다시 물었다. “세월호 당시 많은 한국 언론은 정부 발표에 대한 의심이나 비판 없이 주로 받아썼고 그 결과 큰 비난을 받았다. 비슷한 경험은 없었나?” 대답은 단호했다.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비판을 제때 해야 당국이 제대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78-5 크리스로즈③ 피해자 존중
‘파파라치’로서 유명 연예인들을 따라다니던 크리스 로즈 전 기자는 카트리나를 겪으며 삶이 180도 변했다. 연예인 그림자가 아니라, 피해 주민들의 삶을 주목했다. 외부의 시선이 아닌, 뉴올리언스 사람들의 일상을 대변했다. 카트리나로 처절하게 붕괴된 도시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 또 앞으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등의 문제를 기사화했다. 뉴올리언스의 작은 골목마다 스며든 폭음과 약물 중독, 우울증 등이 그의 기삿거리였다.

로즈의 ‘몰입보도’는 대중의 큰 관심을 끌어냈다. 하지만 ‘왜 그리 기사에 분노와 슬픔이 가득 차 있는가?’라는 지적도 뒤따랐다. 이에 대해 로즈는 주민들의 삶에 감정적으로 애착을 가졌던 것이 독이 되기도, 약이 되기도 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면서도 그가 끝내 놓지 않았던 문제의식은 ‘사람들은 어떤 스토리텔링에 쉽게 공감할 수 있는가?’였다. 로즈 자신도 취재 과정에서 술과 약물에 빠져 버렸다는 점에서 절차에 대한 문제 제기도 가능하다. 하지만 인간 군상에 한발 더 다가가려는 그의 화두와 노력은 고민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Ⅳ. 나가며
미국 언론을 그대로 배우자는 취지는 아니다. 그들이 지닌 문제점 또한 허다하다. 중요한 것은 ‘공유’가 아닐까. 그들은 9년 전에, 우린 3개월 전에 재난과 관련된 ‘보도 참사’를 겪었다. 서로가 겪은 비슷한 내용의 오류를 솔직하게 한데 꺼내놓고 함께 반성한 뒤 앞을 모색하자는 취지다. 이 과정에서 서로 좀 더 완벽에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뉴올리언스 지역 기자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재난보도 시스템의 올바른 방향’이라는 주제 아래 몇몇 지향점을 던져봤다. 체계화된 분석 틀이나 정교한 이론을 기초에 두고 있지 않다. 주관적인 해석과 허술한 취재에 불과하다. 다소 뻔한 이야기의 반복이 아닌가 반성해본다. 하지만 뻔하다는 이유로 논의를 피한다면 변화와 발전의 가능성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정교한 사실보도와 성역 없는 비판, 그리고 피해자 존중의 저널리즘 원칙을 다시 세워야 할 시점이다. 동시에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각자 자리에서 만들어나가는 일, 그것이 세월호가 한국 저널리즘에 던져준 숙제일지도 모른다.

79-7 연수 79-6 FEMA2
※ 방송기자연합회 재난재해 전문취재 연수는 2014년 6월 21일부터 7월 4일까지 미국 워싱턴 D.C.와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 등지에서 진행됐습니다. 미국 연방재난관리청과 뉴올리언스시 재난 담당 부서, 루이지애나 주방위군 관계자들을 만나 허리케인 카트리나 이후 새롭게 구축한 재난 대응 시스템에 대해 설명을 들었고,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한복판에서 취재했던 전현직 언론인들을 만나 올바른 재난 보도의 방향에 대해 서로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