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한국방송기자대상_기획다큐부문_의문의 형집행정지_MBC 임소정 기자

청부살해범이 VIP 병실 생활이라니…

‘영남제분’ 사건과 함께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2013년이 가고 새해가 밝았습니다. 방송이 나간 지 1년, 검찰은 윤길자 씨의 주치의 박 교수에게 징역 3년에 추징금 1053만원을, 류 회장에게 징역 4년 6월을 구형했고, 이 둘은 오는 2월 7일 재판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의사협회에서는 박 교수의 면허를 취소하는 건의안을 보건복지부에 제출했고, 대검찰청에서는 앞으로 형집행정지 시 피해자의 가족에게 이 사실을 통지하는 방안을 마련했으며, 법무부에서는 형집행정지를 악용하지 못하도록 법안을 개정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2002년 부산 영남제분 사모 윤길자 씨가 사위의 이종사촌 여동생 하지혜 양을 불륜 상대로 잘못 의심해, 청부살인까지 저지른 ‘이대 법대생 공기총 살인사건’. 지난 해 2월 이화여대 앞에서 고인의 아버지를 처음 만났습니다. 처음 접한 이야기는, 정말 믿기 어려웠습니다.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던 ‘사모님’ 윤 씨가 감옥 대신 6년 넘게 세브란스 병원 VIP 병실을 들락거리며 지내왔다는 것이었습니다. 딸을 잃은 뒤 산속에 묻혀 지내고 있다는 하 양의 아버지는 윤 씨가 입원한 세브란스 병원 근처 식당에서 밥 한술 제대로 뜨지 못한 채 한숨만 내쉬었습니다.

하지만 하 양 아버지는 제보 내용을 뒷받침할 증거 자료를 갖고 있진 않았습니다. 게다가 윤길자 씨는 더 이상 세브란스 병원에 없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수소문 끝에 경기도의 한 병원 특실로 옮겨 입원 중인 윤 씨를 찾아냈습니다. 취재팀이 간접적으로 확인한 세브란스 병원 주치의의 진단서에 따르면, 윤 씨는 거동조차 불가능한 상태여야 했지만, 그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증거 확보가 문제였습니다. 혹시 모를 윤 씨의 외출에 대비해 서울 청담동 빌라 앞에서 주말을 꼬박 보냈지만 윤 씨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특실 병실 앞에는 바로 간호사 데스크가 있어 윤 씨를 지켜보기가 어려운 상태. 아예 스텝을 입원시키고, 보호자 행세를 하며 지켜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두 달 가까이 여러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멀쩡히 거동도 하고, 식사도 잘하는 윤 씨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겉모습으론 불충분했습니다. 취재를 거듭하던 중 주치의의 진단서와 윤 씨가 10여 개 과의 전문의들에게 협진을 받은 의료기록, 간호기록지를 입수할 수 있었습니다. 취재원 보호를 위해 이 부분은 자세히 밝히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며칠 간 의료용어를 찾아가며 살펴본 의료기록은 윤 씨의 주치의 박 모 교수가 쓴 진단서 내용과 많이 달랐습니다. 진단서에 따르면 윤 씨는 누구의 도움 없이는 거동조차 불편한 상태라고 돼있었는데, 의료기록에는 윤 씨의 상태가 괜찮다고 돼있는 식이었습니다. 특히 모든 과의 기록 마지막엔 윤 씨가 호소하는 증상과 객관적인 관찰, 검사결과가 배치되자 심리적인 문제가 많이 작용할 것으로 보고 정신과에 협진을 의뢰했는데 윤 씨는 정신과에서 권유한 약이나 진료조차 거부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윤 씨를 진료한 전문의들의 연락처를 확보해 일일이 통화를 한 결과, 진단서가 잘못된 것 같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특히 거동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파킨슨 증후군을 진료한 신경과 전문의는 윤 씨가 파킨슨 증후군이 아닌 것 같아 약을 그만 먹어도 될 것 같아 말했다고 답했습니다. 좀 더 정확한 판단을 위해 대한의사협회의 협조를 받아 다른 병원의 전문의들에게 진단서와 의료기록을 보여주고 분석을 부탁했습니다. 역시 주치의의 진단서가 왜곡된 것 같다는 의견이 줄줄이 나왔습니다. 한 전문의는 “이 환자가 병원 이사장의 가족이냐? 이런 진단서를 작성하긴 어렵다.”고 혀를 내둘렀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세브란스 장기입원심사평가위원회에서는 이런 진단서의 문제를 인지하고, 지난 해 1월 말, 윤 씨를 퇴원하도록 종용한 것으로도 확인됐습니다.

직접 만난 윤 씨는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방송하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진단서를 써준 세브란스 병원 주치의도, 윤 씨가 당시 입원 중인 일산병원 주치의도, 누구 하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검찰은 형집행정지 사유를 밝히라는 수십 번의 정보공개청구에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다.’며 묵묵부답으로 일관했습니다. 방송 사흘 전, ‘적법한 절차에 따라 형집행정지가 연장됐다.’는 입장만을 내놓던 서울 서부지검 차장검사는 부랴부랴 세브란스 병원에 대외비 공문을 보내, 지난해 형집행정지 연장 당시 윤 씨가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 물었습니다. 그리고는 제게 전화를 걸어 윤 씨가 당시 집중치료를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며 방송을 재검토하는 게 좋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방송이 나간 직후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윤 씨는 다른 병원에 다시 재입원까지 하려했다 검찰에 적발돼 방송 한 달 만에야 재수감되자, 영남제분 회장 류원기 씨는 언론중재위 제소는 물론 기자를 고소했습니다.

잘못을 저지른 무기징역수가 죗값을 제대로 치르지 않고 있는 현실을 바로잡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취재, 속도 많이 끓였지만 제도까지 개선이 되는 것을 보니 그동안의 마음 고생이 조금은 없어지는 듯합니다. 보도가 나가기 전에도 후에도 항상 곁에서 격려해주신 시사매거진 2580 및 MBC의 선후배들, 훨씬 많이 고생한 스텝들, 기꺼이 협조해 준 대한의사협회, 저를 지혜 양이 보내준 사람이라며 굳게 믿고 기다려주신 지혜 양의 아버지와 가족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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