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회 기획다큐부문_<시사기획창> 끝나지 않은 고통_KBS 김진희 기자

“왜 이런 아이템을 하자고 해? 나는 싫어.”

저와 함께 호흡을 맞추기로 한 촬영기자 선배가 제게 처음 한 말입니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진취재를 시작하면서 알게 됐죠. 알고 보니 천하의 울보였습니다. 올해 한국방송대상에서 카메라기자 상을 받기도 한 이 선배는 참 눈물이 많았습니다. 제가 피해자 분들 인터뷰하는 동안 뒤에서 카메라 부여잡고 눈물 콧물 다 짜내며 진을 빼고 계셨습니다.

전 다른 이유로 망설였습니다. ‘가습기 살균제’란 여섯 글자 때문이었죠. 늘 썸씽 뉴를 찾아 헤매는 기자에게 ‘가습기 살균제’란 듣기만 해도 식상할 만큼 수십 번도 넘게 다뤄온 아이템이었으니까요. 그래서 할까 말까… 얼마나 망설였는지 모릅니다. 그 사이 수많은 다른 취재거리들을 기웃거렸고, 마침내 다른 아이템을 찾아내 발제문까지 작성했습니다. 그래, 이 아이템은 독종도, 특종도 아니야… 품은 품대로 들고 빛도 나지 않을 거야 등등 나름의 합리화에 들어가고 있었죠.

하지만 그렇게 이 아이템을 내려놓으려 한 마지막 순간까지도 제 마음은 동요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가습기 살균제를 내려놓는 건 잘 하는 선택일까. 내가 얼마나 분노했던 사안인데 안하려는 게 옳은 행동인가… 한참을 생각하다 스무 부 정도 미리 뽑아놓았던 발제문을 조용히 휴지통에 구겨 넣었습니다. 독종, 특종 아니면 어때. 101번째 프로그램이 되더라도 중요한 내용이라면 그걸로 의미있는 거야… 그리고 그 날 저녁, 다시 발제문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이 소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우연히 접속하게 된 한 시민단체 홈페이지를 통해서였습니다. 기자인 저조차도 이미 끝났을거라 지레 짐작했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었던 겁니다. 다시 기사들을 뒤져봤습니다. 공정위와 시민단체가 관련 기업들을 검찰에 고발했고, 과징금이 부과됐다는 기사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확인해 보니, 아무 것도 이행된 게 없었습니다. 해당기업들은 거대로펌을 앞세워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조치에 반발했고 법원에 의해 집행 중지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은 그 어떤 기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하루하루 새롭게 터지는 수많은 사건들 속에서 조금씩 관심 밖으로 멀어져가고 있었던 겁니다.

해당 기업들과 접촉했을 때도 마찬가지 반응이었습니다. 이 사안에 대한 언론 대응 매뉴얼이 이미 정해져 있었고, 도식화된 답변 외엔 들을 수 없었습니다. 이미 다 입장을 밝히지 않았냐, 더 이상 할 말 없다는 도돌이표같은 답변을 수차례 들어가며, 전화를 걸고 또 걸고 만나달라 애원하고 협박하기를 반복했습니다. 무작정 찾아가 입구에서 기다려보기도 하고, 자리를 비웠다는 뻔한 거짓말에 알면서 속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기업 입장에 대한 진일보한 취재는 없었습니다. 이렇게까지 취재진이 노력했지만, 사람 죽인 제품을 만든 기업들은 묵묵부답이었다라는 분노만 들끓게 했을 뿐입니다.

정부 부처 관계자들의 대응 역시 답답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수차례 요청한 정보공개청구에도 응하지 않았고, 비교적 쉽다는 공무원 인터뷰 역시 이번엔 녹록치 않았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관련해선 잘했단 소리 들을 게 없으니 서로 안 하겠다는 것이었죠. 이리저리 핑퐁게임을 하는 통에 제작에 임박해서야 정식 인터뷰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이렇게 얼굴 붉히고 핏대 세워가며 취재해 보기도 참 오랜만이었던 것 같네요. 스스로는 제법 상냥한 기자라고 생각하는데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늘 현장에서 잊지 않았던 게 있습니다. 제가 만났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입니다. 나 때문에 아이가 죽었다며 부모는 가슴을 쳤고, 또 어떤 이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습니다. 겨우 잊고 사는데 왜 연락했냐며 화를 내며 끊기도 했고, 어떤 분은 인터뷰하고 나면 며칠씩 앓아눕는다며 정중히 거절하기도 했습니다. 간신히 취재를 허락받고 찾아갔을 때도 대체 이 어려운 이야길 어디서부터 어떻게 꺼내야 하나…마음이 참 힘들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많이 기억해 주길 바랍니다. 한 번이라도 더 회자되고, 한 번이라도 더 언급되길 바랍니다. 부끄럽지만 그런 마음으로 ‘이달의 방송기자상’에 출품했습니다. 좋은 상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이 사건이 끝까지 잊혀지지 않기를, 냄비처럼 들끓다 사그라지길 기다리는 어느 누군가의 불순한 기대처럼 되지는 않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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