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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내_YTN 우장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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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우장균 기자(해직언론인)

아내는 아무 말 없이 텔레비전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2시간쯤 지난 것 같다. 아내가 텔레비전을 보면서 이렇게 아무 표정 없이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경우는 드문 일이다. 아내는 특히 예능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이 나와 우스갯소리를 하면 박장대소하며 텔레비전을 봤다. 그러면 그 웃음소리가 문 밖에서도 들릴 정도였다. 그날 아내가 보았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물론 예능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아내가 넋 없이 본 프로그램은 대통령 선거 개표방송이었다. 방송사의 요란한 그래픽은 이미 승부가 난 개표방송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마력을 갖고 있었다. 아내는 그러나 대통령 후보들의 기기묘묘한 그래픽 사진에 매료돼 텔레비전 모니터에 몰두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방송 3사의 대통령 선거 출구조사 결과는 초박빙 접전이었다. 여당 후보가 오차범위 이내인 1.2% 포인트 앞섰다. 아내는 오차범위에 있는 출구조사 결과가 뒤바뀔 수도 있다는 기대감으로 텔레비전 앞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출구조사 결과는 뒤집히지 않았다.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대한민국은 정권교체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날 밤 아무 말이 없이 개표방송을 보던 아내가 나에게 한마디 던졌다.
“여보, 당신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나는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2008년 10월 6일 나는 해고통보를 받았다. 그날 나는 YTN 청와대 출입기자로 춘추관에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해고 통보였다. 사실 나는 부끄럽게도 YTN 노조의 낙하산 사장 저지 투쟁에 큰 역할을 하지 못했었다. 그날 밤 나는 노조의 비상총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친 이명박 계열로 훗날 특임장관까지 지냈던 주호영 의원과의 저녁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교적 합리적이라는 평을 받았던 주 의원은, 그러나 28년 만에 벌어진 언론인 대량해고 사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날 밤 집에 늦게 들어갔다. 아내 그리고 아들과 딸은 모두 편히 자고 있었다. 한 집안의 가장이 된 뒤 그토록 의미심장하게 잠든 처자식의 얼굴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이튿날부터 복직투쟁은 시작됐다. 대다수 언론이 언론인 해고 사태를 크게 보도했다. 일부 언론은 해직기자 6명의 이름을 모두 싣기도 했다. 그때까지 나는 아내에게 해고 됐다는 얘기를 하지 못했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내는 내 얘기를 듣고 힘없이 한마디 했다.
“그랬구나. 인터넷에서 YTN 기자들이 해고됐다고 나왔는데, 거기에 당신도….”
아내는 이름이 거명되지 않은 뉴스를 보고 조마조마했었던 것 같다.

나이가 마흔이 넘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가장을 세 글자로 줄이면 ‘미친놈’이라고 한다. 마흔 다섯에 해직됐던 그 미친놈의 나이가 50이 됐다. 아내는 그 미친놈을 5년 가까이 보살펴주고 있다. 몇 년 전 TV 프로그램에서 부활의 김태원 씨가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대마초 사건 등으로 무위도식하던 그는 어느 날 아침, 술기운이 남아서 창밖을 넋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김태원 씨의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보,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
나의 아내도 5년 동안 빈둥거리는 남편을 한 번도 타박한 적이 없다. 이 글을 쓰는 날에도 아내는 해직기자 남편을 챙겨 주었다.
“여보, 며칠 뒤면 당신 생일인데, 뭘 갖고 싶어?”
사람과 짐승을 구분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염치다. 미쳐 버린 세상에 미쳐 버린 자에게도 염치는 있다. 아내에게 더 이상 무엇을 바랄 수 있겠는가.

아내가 가졌던 기우는 현실이 되고 있다. 비록 정권 교체는 되지 않았지만 대통령은 바뀌었다. 그리고 새 대통령이 취임한 지 백일이 지났다. 그러나 나는 4년 8개월째 해직기자이다. 대통령 선거 얼마 전에 열두 살 된 딸이 아내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엄마, 박근혜 후보는 어떤 사람이야?”
나는 평소 정치에 관심이 없는 아내가 딸에게 어떻게 대답할까 지켜보았다. 아내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짧게 대답했다.
“응, 독재자의 딸이야.”
준비된 여성 대통령에게 준비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언론탄압을 승계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나마 새 대통령이 그의 아버지처럼 18년 동안 집권할 수 없다는 것이 해직기자와 그의 아내에게 조그마한 위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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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in 2013년 7·8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해직언론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