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5회 경제보도부문_기재부, 단어 하나로 날린 현대家 증여세 수백억_YTN 최민기 기자

디테일에 숨은 악마를 찾다…단어 하나로 증여세 수백억 날린 기재부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독버섯 같은 조항은 언제나 잘 보이는 곳을 피해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세부사항 속에 숨어있음을 경계하는 말일 것입니다. 이번에 취재한 사안도 그랬습니다. 2011년 당시는 대기업 총수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가 유행처럼 성행했습니다. 재벌 2세, 3세들에게 수조 원대에 달하는 기업과 재산을 물려주면서도 증여세는 푼돈만 내는 재벌가에 사회적 공분은 들끓었고, 사실상 증여 행위인 편법 일감 몰아주기에 정당한 증여세를 물려야 한다는 사회 여론도 점차 달아올랐습니다. 그렇게 마련된 것이 내부거래 비율 30% 초과분엔 증여세를 물리도록 하는, 현재의 일감 몰아주기 증여세 규제입니다. 재계는 반발했지만, 무르익은 사회 여론까지 거스를 순 없었습니다. 우리는 일감 몰아주기에 경종을 울렸다고 믿었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단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증여세 문제를 취재하던 저는 국세청 자료 하나를 입수하게 됩니다. 현대차그룹의 차기 후계자이자 현대글로비스의 최대주주 정의선 부회장이 일감 몰아주기로 내야 할 증여세를 대폭 감면받고 있던 사실이 담긴 내부 자료였습니다. 2012년, 원래 정 부회장이 내야 할 증여세는 238억 원이었지만 무려 200억 원에 달하는 세금 감면을 받으면서 정작 낸 세금은 30억 원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현대글로비스는 내부 거래 비율이 무려 80%가 넘는, 일감 몰아주기 의혹의 정점이었던 회사였기 때문에 그 부당한 사익 편취에 대해 최대주주인 정의선 부회장이 내야 할 돈이 수백억 원에 달했던 겁니다. 그런데 고작 몇십억 원만 제외하고 나머지 금액은 재벌가 일가 호주머니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우리 사회가 애써 마련한 편법 증여 규제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 순간이었습니다.

 

이는 단 하나의 시행령 조항 하나 덕분이었습니다. 바로 ‘수출 목적으로 해외 계열사와 거래한 내부 거래 금액은 과세조항에서 제외한다’는 조항이었습니다. 이 조항에 힘입은 현대글로비스 내부거래 비율은 81.7%에서 37.3%로 수직 낙하했고, 이 조항으로 지금까지 감면된 증여세는 무려 천억 원에 달합니다. 이 조항은 논란이 많았습니다. 담당부처인 기획재정부는 수출 억제를 위한 조항이라고 해명했지만, 사실 앞뒤가 안 맞는 말이었습니다. 일감 몰아주기는 부당하게 사익을 편취한 총수 일가가 내는 돈이지, 기업이 내는 돈이 아니라 원칙적으로 수출이 억제될 이유가 없습니다. 더 희한한 건 같은 수출 목적이라 하더라도 국내 계열사와 한 거래는 또 적용이 안 된다는 겁니다.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죠. 이렇게 많은 문제가 있는 조항은 아무런 공론화 없이 기재부 머릿속에서 말 그대로 갑자기 툭 튀어나왔습니다.

 

조항 자체도 문제였지만, 조항이 만들어진 배경을 취재하던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이 하나 더 발견됐습니다. 입법 예고 기간까지만 해도 없었던 단어 하나(제품→제품·상품)가 실제 신설 때 조항에 급작스레 추가된 겁니다. 남들이 눈치채기 어려운 작은 변화였지만 현대글로비스는 가까스로 감면 대상에 포함되는 막대한 행운(?)을 누렸습니다. 재벌가는 이 조항으로 웃었겠지만, 국가와 국민들 입장에선 단어 하나에 세수가 무려 수백, 수천억 원이 날아간 셈입니다. 이 과정엔 전국경제인연합회, 전경련이 조항 변경에 개입된 사실도 취재로 밝혀졌습니다.

 

이후 기재부는 정책적 판단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이렇게 날아간 세수에 대한 책임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재벌가 편법 증여를 막겠는 사회적 합의를 송두리째 무력화시킨 책임은 누구에게 물을 수 있을까요. 소위 조세 전문가라는 기획재정부가 사회적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저지른 짓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습니다. 수십억 원 세수 확보에도 머리를 싸매는 게 조세 정책인데, 담당 부처인 기재부의 손놀림 한 번에 몇백억, 몇천억 원이 날아간 사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조세 정책은 복잡하고 난해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이 잘못된 조세 정책이 가져온 문제의 심각성을 잘 모르고 지나치곤 합니다. 취재는 내내 쉽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세법을 뜯어봐야 했고 관련 연구 자료를 찾아다니면서 맨땅에 헤딩 같은 취재를 반복했으니까요. 그러나 많은 분의 도움으로 이 문제를 보도할 수 있었고 이후 국회와 시민단체, 시청자들이 이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내주면서 그간의 취재가 헛고생에 그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Posted in 이달의 방송기자상, 이달의 방송기자상 수상작 취재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