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11년 동안 지켜온 공정성과 독립성, 방송기자연합회

[발행인 칼럼]
11년 동안 지켜온 공정성과 독립성, 방송기자연합회

안형준 회장

 

 

 

 

“…연합회를 좀 맡아줘야겠어요”
2017년 11월 어느 날 아침, 방송기자연합회장을 역임했던 선배의 전화였습니다. 어색한 침묵이 무척 길게 느껴졌습니다. 취재일선에서 3년 넘게 쫓겨났다가 보도국 복귀를 눈앞에 둔 시기였습니다. 솔직히 부담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거부한다면, 통화중인 선배가 걸어온 길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 순간 한 노신사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동아투위의 정신이 여러분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베이지색 버버리를 입은 대선배가 나지막한 톤으로 한 얘기였습니다. 그해 10월 파업 중인 KBS와 MBC의 연대집회였습니다. 그 노신사는 1974년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하고, 기나긴 해직의 길을 걸어오신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명예이사장이었습니다. 그는 70년대 동아방송 라디오는 수도권은 물론 충청권 일부에서도 영향력이 컸다고 기억했습니다. 동아투위 해직의 길에는 기자들 외에도 PD와 아나운서도 함께 했습니다.

방송기자연합회는 2008년 3월 26일 출범했습니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으로 방송환경이 급변하는 가운데, 미디어의 상업적 측면이 부각돼 공정성과 독립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취지의 창립선언문이 발표됐습니다. 공정성과 독립성의 수호’가 핵심가치였습니다. 또 PD나 아나운서, 방송기술인 등 직종별 직능단체가 있는데, 방송기자만 없다는 인식도 공유됐습니다. 

초대회장 임정환 선배는 2008년 10월 한국방송학회와 공동으로 ‘이달의 방송기자상’을 제정했습니다. 2009년 가을에는 ‘방송기자연합회 종합체육대회’가 시작됐습니다. 2010년에는 월간‘방송기자’가 발간됐고, 언론인을 꿈꾸는 젊은이를 위한 ‘저널리즘 스쿨’이 개최됐습니다. 2011년에는 단기 해외연수가 시작됐고, 2013년 부터는 연수 결과물이 단행본으로 제작됐습니다. 2018년에는 이달의 기자상 수상이 ‘경제부문’을 추가하고 ‘뉴미디어’와 ‘영상 부문’을 분리해 7개 부문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SNS를 통한 가짜뉴스의 확산에 대응해 ‘팩트체킹 공모전’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2019년 다가오는 봄, 11번째 생일을 맞습니다.
연합회와 자주 접하는 외부인들의 눈에, 연합회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한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역동적이고 활기차다’고 언급합니다. 또 정파성과 상업성이 저널리즘을 지배하려는 움직임 속에서, 나름대로 독립성을 지키려 애쓰고 성찰하는 이들이 상대적으로 많다고 말했습니다. 기자정신에 충실하려면 개인은 물론, 연합회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당부했습니다.

‘저널리즘 토크쇼 J’에 간간이 출연하는 한 언론시민단체 관계자는, 연합회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했습니다. 활자매체보다 방송이 대세인 환경에서, 인권위 등 외부단체와 협력해 방송이 특화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기존의 여러 취재 매뉴얼과 가이드라인은 방송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동아투위 위원장을 지낸 한 선배는 ‘아쉽다’는 표현을 쓰셨지만, 사실상 꾸짖었습니다. 젊은 기자들이 시사문제를 다루거나 분석하는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전문성 향상을 위한 개인적 노력과 연합회 차원의 재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몇 년 전 방송기자연합회를 이끌었던 한 선배의 애정 어린 충고를 전합니다. 시간에 쫓기는 상황에서도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상황을 공유하는 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소속 방송사를 위해 애쓰는 분발을 넘어서서, 공정방송과 언론민주화정착, 민족의 미래를 고민하는 후배들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연합회 사무실에는 액자 없이 벽에 붙어 있는 휘호揮毫가 있습니다.

언제든 위태로울 수 있는 공정방송, 액자 없이 바람에 흔들려야 나태함을 막을 듯싶습니다.

 

Posted in 2019년 3.4월호, 발행인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