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한 릴레이] 다시, 전기 자전거를 정의하다

[만만한 릴레이]
다시, 전기 자전거를 정의하다
이재섭 프로필

 KBS 영상취재부 이재섭 기자

전기 자전거의 정의
자전거로서 사람의 힘을 보충하기 위하여 전동기를 장착한 것 중, 페달과 전동기의 동시동력으로 움직이고, 시속 25Km 이상으로 움직일 경우 전동기가 작동하지 아니하며, 부착된 장치의 무게를 포함한 자전거의 전체 중량이 30Kg 미만인 것. –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호의 2를 편술함.

자전거가 좋았던 소년
자전거를 처음 탔던 순간의 짜릿함을 기억한다. 넘어질 것 같은 쪽으로 핸들을 잽싸게 기울여야 오히려 넘어지지 않는, 페달질을 빨리할수록 오히려 더 안정적으로 주행할 수 있는, 어찌 보면 모순된듯한 그 이질적인 움직임. 그리고 그것을 해냈을 때 비로소 느껴지는 뺨을 스쳐 흐르는 바람 소리, 스테디캠으로 촬영한 듯 부드럽게 흘러가는 풍경들. 자전거가 좋았던 소년은 그렇게 어릴 적 살던 동네의 머릿속 지도를 확장해나갔다. 소년은 대학 시절 첫 아르바이트의 월급으로 자전거를 샀고, 동네 친구들과 일명 ‘철TB’를 타고 목포로, 속초로, 그렇게 전 국토로 머릿속 지도를 넓혀나갔다.

출근길, 지하철 테트리스
2010년, 지역순환 근무를 마치고 본사로 복귀했을 때 얻은 내 가족의 보금자리는 서울 북쪽의 어느 4호선 역세권 대단지 아파트였다. 이곳을 선택한 유일한 이유는 와이프의 직장이 바로 앞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좀 힘들게 다녀도 괜찮으니, 아이와 고생하는 당신이 걸어서 편하게 직장에 다니라고…. 이렇게 선한 의도로 시작된 내 오지랖은 2년을 채 못 버티고 끝이 났다. 출퇴근길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가정의 행복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지하철을 타든, 버스를 타든, 2번은 갈아타야 했다. 지하철은 운 좋게 한 번에 타더라도 전자오락 ‘테트리스’의 블록 조각들처럼 빈 공간 이곳저곳에 내 신체 조각들이 끼워 맞춰진 채로 가야 했다. 버스는 도착시간 편차가 너무 심했고, 자가용 출퇴근은 정체가 극심했다. 택시는 비용이 2만 원 가까이 나오는 터라 엄두도 못 냈다. 이런저런 시도 끝에 지하철을 타고 다녔지만, 문제는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와 퇴근길 스트레스까지 겹쳐 집에 오면 행복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예민한 내 성격도 한몫했겠지만, 결국 1년 6개월 만에 회사에서 지하철로 두 정거장 거리의 오래된 한강변 아파트로 이사했다. 때마침 와이프는 쌍둥이를 임신하여 자연스레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리고 소년은 잠시 잊고 살았던 기억 속의 자전거를 다시 끄집어냈고, 알아보던 중에 ‘전기자전거’라는 탈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Why E-bike now?
전기자전거는 10km 이내에서 자동차를 제외하고 회사까지 ‘Door to Door’로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며, 시간 편차도 가장 적고, 가장 경제적이다. 조금 늦었을 땐 전기의 힘을 많이 빌려 더 빨리 가고, 급하지 않을 땐 전기의 도움을 적게 받아 천천히 간다. 두 경우 모두 내 다리가 들이는 힘은 거의 같고, 모든 경우에서 일반 자전거보다 다리의 힘이 훨씬 덜 든다. 전기자전거의 PAS(Pedal Assist System, 페달질을 해야만 전기가 구동) 모드라는 게 단계별로 속도를 선택할 수 있기에 가능한 마법이다. 일명 ‘할리우드 페달질’이다.

운동을 하고 싶으면, 전기를 끄면 된다. 전기를 끄면 일반 자전거보다 무겁기에 오히려 더 많은 운동이 된다. 요즘 시중에 판매되는 전기자전거는 완충 시 저속 PAS 모드로 100km 정도는 거뜬히 달릴 수 있고, 착탈식 배터리는 자전거 본체에서 분리하여 가정용 220V로 충전할 수 있다. 쓸 만한 입문자용은 80~130만 원 정도로 가격대가 형성되어 있지만, 2년 치 왕복 지하철 비용 정도이며 오래 탈수록 더 경제적이다.

날씨와 전기자전거
전기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면 미세한 날씨의 변화를 온몸에 각인할 수 있다. 매일 조금씩 몸 안에 계절의 변화를 새기는 것은 환절기 건강유지에도 좋은 것 같고, 자연의 섭리를 온몸으로 받아들인다는 측면에서 ‘현재’에 더 충실해지는 느낌이다. 그 느낌과 그 풍경이 주는 기쁨이 더 크기에 미세먼지 따위는 마스크 하나로도 충분하다. 추위는 ‘불꽃 페달질’ 5분이면 몸 안에서 생기는 열기로 극복한다. 더운 날은 전기의 힘에 충분히 기대어 땀 흘리지 않는다. 다만, 주행안전을 위해 비와 눈은 피한다. 날씨가 좋지 않은 날보다 좋은 날이 더 많기에 그렇지 않은 날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한강변이 모든 것들을 품는 것처럼, 나도 날씨들을 품는다. 그래야만 날씨 좋은 날 받는 기쁨이 온전히, 정직하게 내 것이 된다.

행복은 집에 있다
한강변은 계절마다 다른 색의 옷을 갈아입는다. 출근길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풍경은 봄날 아침 강아지풀에 이슬이 맺혀 있을 때다. 퇴근길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풍경은 선유도 공원을 바라보며 낚시하는 사람들을 뒤에서 풀 샷으로 바라볼 때다. 한강변을 4계절 내내 관통하는 하나의 느낌은 ‘여유로움’이다. 모든 풍경과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 보이고, 또한 여유롭다. 한강변이 품고 있는 이 여유로움의 구석구석을 전기자전거로 부유하며, 한껏 행복 에너지를 흡수한다.

그렇게 집에 들어가면 나는 출근하기 전보다 더 힘껏 아이들을 안아줄 수 있다. 아무리 회사 일이 고단하고 힘들지라도, 전기자전거에 실려 한강변에서 말랑말랑한 행복 에너지를 충전시키고 왔기에 그 에너지를 아이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 더 나누고 싶을 땐, 다 같이 손잡고 말랑말랑한 한강변으로 나간다. 그렇게 내 가족도 한강변의 한 풍경이 된다. 그래, 지금, 현재, 행복은… 집에 있다.

다시, 전기자전거의 정의
자전거로서 사람의 힘을 보충하기 위하여 전동기를 장착한 것 중, ‘여유’와 ‘행복’의 동시동력으로 움직이고, 시속 ‘현재’ Km를 ‘초과’하여 움직일 경우 ‘행복기’가 작동하지 아니하며, 부착된 ‘여유’의 무게를 포함한 자전거의 전체 중량이 ‘현재’ Kg ‘이하’인 것을 “전기자전거”로 정의함. – 「전기자전거와 현재의 행복에 관한 법률 제1조 1항

다음 릴레이 주자로 고양이 3마리의 집사로 생활하고 있는 MBC 박동혁 기자를 지목한다. 박동혁 기자의 집사 일기를 들어보고 싶다

Posted in 2019년 3·4월호, 만만한 릴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