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나마나 한 명절 아이템 이제 그만] ‘하늘에서 바라본 설날’, 시청자는 궁금해 할까?

[보나마나 한 명절 아이템 이제 그만]
‘하늘에서 바라본 설날’, 시청자는 궁금해 할까?

KBS 김덕훈 기자(사회부)

2월 5일, 설 당일 지상파 ‘간판’ 뉴스에 등장한 기사부터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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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포근함 속 가족들 ‘웃음꽃 가득’…하늘에서 본 설날
기사: (전략) …고향 집 앞에선 작별이 아쉬운 가족들이 발걸음을 떼지 못합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안부 인사, 가는 시간은 잡지 못해 손 흔들며 다음 만남을 기약합니다. 읍성에서는 설맞이 놀이
가 한창입니다. 제 몸통만 한 윷가락을 힘껏 던진 꼬마 아이. 두 손 뻗어 만세를 외칩니다. 원통을 향해 투호를 하고, 허공을 가르며 헛발질을 합니다… (후략)

너무 평범해 기시감마저 드는 헬기 스케치 기사다. 다음은 해당 기사에 달린 시청자 댓글이다.

댓글 ①: 아이고 의미 없다. 이런 현실과 동떨어진 기사는 언제까지 봐야 할까? 바뀔 때 안 되었나? 스타트가 그리 어렵나? 죄다 앵무새마냥 똑같이들. 한심한 뉴스.
댓글 ②: 완전 소설을 쓰네ㅋㅋㅋㅋㅋ 늘 도덕 교과서처럼 사람들 가르치려 드는 게 제일 문제. 지들이 뭐라고 시민들 어쭙잖게 가르치려 들어.
댓글 ③: 근데 이거 드론 몰카랑 차이점이 뭔지… 방송이라 헬기로 사람 뭐 하는지 막 찍어도 상관없는 건가?

이 한심한 평가를 받은 기사 작성자는 바로 필자 본인이다. “설에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기사를 골라 달라”라는 방송기자연합회의 원고 청탁을 받을 때 이미 직감했다. 그 기사는 아마 내가 쓰게될 것 같다고. 결국 설 연휴 ‘한심한 기사’를 솎아내려던 기고문은 반성문이 됐다. 변명거리가 없는 건 아니다.

① 설 연휴라고 뉴스 시간이 줄어들지 않는다. 고로 무슨 기사를 쓰더라도 뉴스 시간은 채워야 한다.
② 내가 발제한 게 아니다.
③ 난 당직자였을 뿐이다.
④ 다른 언론사들도 죄다 ‘하늘에서 본 설날’ 비슷한 기사를 썼다.

‘하늘에서 본 설날’은 소위 ‘막는 기사’다. 동료들이 설 연휴를 즐길 때 당직 기자가 뉴스 시간을 어떻게든 때우기 위한 용도다. 헬기에서 내려다본 화면은 드론이 대중화된 요즘 화면으로서의 신
선함조차 없다. 사생활 침해 논란만 부추길 뿐이다. 연휴 기간 발생이 여럿 터져준 덕분(?)에 ‘하늘에서 본 설날’ 같은 부류의 기사 비중이 다행히 적었다. 북미회담 개최, 부동산값 하락, 김용균 씨 사망 관련 당정 대책, 안희정 전 충남지사 징역형, 영화 극한직업 1,000만 관객 달성 등 다양한 출입처에서 다양한 일거리가 생겼다. 그럼에도 방송 뉴스 편집자들은 지루하고 반복되는 기사들을 모두 걸러내지는 못했다. 필자 기사가 나갔다는 게 방증이다.

식상한 기사를 안 쓰려면 뉴스 시간부터 짧아져야 한다. 특별한 발생 사건이 없는데 뉴스 시간은 평일처럼 채워야 하나. 오랫동안 반복되는데 해결이 안 되는 걸 보면 문제의식이 없거나, 해결방법이 없거나 둘 중 하나다. 많은 기자들이 이런 ‘억지성 기사’를 쓰는 데에 괴로워하는 걸 보면 문제의식이 없는 건 아닌 것 같다.

이유가 뭘까. 첫째, 연휴 때도 평소처럼 하는 게 시청자에게 신뢰를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하든지. 둘째, 줄어든 뉴스 시간을 채울 방법이 없든지. 

‘헬기에서 본 설날’ 댓글 반응에서 보듯 첫 번째 이유에 대해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설 연휴 때 평소보다 짧게 뉴스를 하는 것보다 식상한 뉴스에 시청자들은 더 화가 난다. 신뢰는 아무 뉴스라도 일단 시간부터 때우자는 태도에서 생기는 게 아니라, 필요한 뉴스를 적당한 시간만큼 할 때 생기지 않나 싶다.

두 번째 이유가 문제라면 해결책을 빨리 찾아야 한다. 줄어든 뉴스 시간을 보충할 교양 프로그램을 만들든, 그해 중요한 역사를 소개하든, 하다못해 인기 프로그램 재방송을 하든 아이디어를 모을 필요가 있겠다. 내년 설 연휴 때는 한심한 기사로 시청자들로부터 욕먹는 기자가 없었으면 좋겠다.

Posted in 2019년 3·4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현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