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답이 있다, 로드맨] 예능과 뉴스가 만났다, ‘로드맨’의 실험

[길 위에 답이 있다, 로드맨]
예능과 뉴스가 만났다, ‘로드맨’의 실험

MBC 염규현

 

 

 

 

로드맨 메인

 

 

 

 

 

 

 

 

 

 

“야, ‘MBC에서 이런 걸 하네!’라는 말만 나와도 성공이다.”
첫 목표는 단순했다. 닳고 닳은 ‘뉴스 판’에 작은 균열을 내보자. 판을 깰 도구가 필요했다. 앵커멘트로 시작해 기자가 넘겨받는 기존 리포트 포맷엔 틈이 보이지 않았다. 뒤집어 생각해 보기로 했다. 아 참, 앵커와 기자가 심각한 얼굴로 ‘멧돼지 뉴스’를 전하는 연성뉴스는 하지 말자고 했었지? 그럼 반대로 멧돼지처럼 활짝 웃으면서 심각한 뉴스를 전해보면 어떨까. 꼭 필요한 이야기를 웃기면서 전해 보자. 예능 포맷을 도입한 이유였다. 포맷을 흔드니 틈이 보였다. ‘예능형 심층뉴스’ 로드맨은 그렇게 나왔다.

 

길 위에 답이 있을까? “여기 말고는 설 곳이 없다.”
홍준표 전 대표와 유시민 작가가 차례로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두 달변가들의 ‘정책 토크’는 영향력이 상당하지만 여기서 중간 마진을 챙기는 방송사는 없다. 당연히 중립 지대도 없다. 이들 뿐인가. 국회의원, 교수, 심지어 청와대도 자체 방송을 한다. 터치 한 번이면 뉴욕타임스 기사가 스마트폰에 한글 활자로 박히고, ‘트위터 눈칫밥’만으로 가동되는 이른바 ‘지진희 알림’이 기상청 보다 한발 앞서 지진 속보를 전한다. 전문성과 정보접근성 모두, 기자들이 누리던 특권은 소멸됐다. 몇 분 동안 전화를 몇 통 돌리고 ‘다 아는 척’해야 했던 기자들의 호시절이 사라졌단 얘기다. 그 자리에는 ‘기레기 담론’만 남았다. 하지만, 현장은 달랐다. 틈이 보였다. 일단, 누구나 가볼 수 없다. 다들 바쁘니까. 가본 사람은 지분이 있다. 가본 곳에 대해서는 ‘아는 척’ 할 자격이 조금이나마 있다고 생각했다. 춥든, 덥든, 미세먼지가 많든 우린 가니까. 현장에서는 중립을 지킬 수도 있다. 본대로, 들은 대로만 말하면 된다. 따지고 보면 저널리즘의 본령이다. 우리의 슬로건은 자연스럽게 ‘길 위에 답이 있다’로 정해졌다. 그리고 코너 명은 로드맨Roadman이 되었다. 데니스 로드맨Rodman과는 스펠링이 다르다. ‘콩글리시’다. 직역하면 ‘길+사람’이다.

로드맨

 

 

 

 

 

 

“엇! 로드맨이다!” 유명해져서 두려웠다
“엇! 로드맨이다” 지난해 말 서울 잠실역 어귀에서 누군가 나를 알아봤다. 생면부지의 젊은 남자였다. TV에 나간 로드맨 방송분(‘순한 맛’)을 유튜브용 예능 콘텐츠(‘매운 맛’)로 각색해 업로드 한지 보름 만이었다. 연락이 끊어졌던 동창, 뜸한 친척한테도 잘 봤다는 문자가 오기 시작했다. 비슷한 경험이 없던 것은 아니다. 2010년 수습기자 시절, 뉴스에 출연하면 간혹 동네 아주머니가 알아보곤 했다. 거기까지였다. 그 뒤로 한동안 사라졌던 경험이 유튜브 업로드와 함께 다시 시작된 것이다. “네, 안녕하세요” 멋쩍게 인사를 했다. 두려웠다. “TV시대는 끝났다”고, 확인 사살을 당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은 유튜브에 로드맨을 치면 ‘데니스 로드맨’ 보다 먼저 나온다. 로드맨 첫 방송 이후, TV 본방송과 유튜브 <엠빅뉴스> 채널의 ‘로드맨 매운맛’ 콘텐츠를 합쳐, 100일 만에 누적 조회 수 100만 뷰를 넘겼다. 다시 한 달 만인 2월 중순 현재는 150만 뷰를 넘어섰다. 정석 책에서 본 지수함수 그래프다. 이 중 80% 가까이는 유튜브용 콘텐츠에서 발생한 것이다. 우리 팀이 유튜브 콘텐츠 제작에 공력을 더 들이고 있는 이유이다. 처음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줄 알았다. 알고 보니 배꼽이 배가 된 것이었다. 그런 시대다.

로드맨2

 

 

 

 

 

 

 

 

 

 

 

 

 

 

 

“기자가 저래도 돼?” 매순간 임상실험을 하고 있다

로드맨3
‘이게 뭐야?’, ‘기자가 저래도 돼?’, ‘자막이 이게 뭐야?’, ‘무슨 뉴스가 이래?’ 

처음엔 사내에서도 크고 작은 비판이 있었다. 기존의 것을 다 바꾸기로 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고 했다. 우리에겐 팩트가 ‘마누라와 자식’이다. 유튜브엔 이런 댓글이 많다. ‘예능인 줄 알았는데 뉴스네요’ 결국, 우리가 예능이 아니라 뉴스라는 걸 웅변해 주는 것은 팩트의 힘이다. 예능 형식의 뉴스에서 팩트를 부풀렸다가는 오히려 역풍을 맞을 거란 우려를 항상 달고 산다. 단순한 통계 수치는 물론이고, 현장의 분위기나 인터뷰의 톤까지 보고 들은 걸 그대로 전해주려고 하는
이유이다. 아이러니하지만 뉴스 형식을 깼더니 오히려 팩트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

아무리 저널리즘의 본령을 지키려고 노력한다지만 뉴스 형식 파괴의 적정선이 어디까지인지 우리 팀도 확신은 없다. 지난 5개월 간 10번 넘게 방송을 냈지만 매순간 신약 테스트를 하는 심정으로 임하고 있다. 물론, 모두가 우리처럼 뉴스의 틀을 깨는 게 능사는 아닐 것이다. 다만, 중립 지대가 사라진 시대, 정규 편성이 무의미해진 시대. 방송 뉴스가 어떻게 해야 생존할 수 있을지, 방송기자들의 역할은 무엇인지, 시청자들에게 존재감을 각인시키기 위한 우리의 실험이 의미 있는 임상 기록으로 남기를 바란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공룡들은 화석으로만 남았다.

Posted in 2019년 3.4월호, 현장에서.